[2017/02/20]

국정해법
야당에 통 큰 정치지도자가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지난 2개월 동안 우리는 국회의 박대통령탄핵 소추로부터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다. 국가  이미지의 추락, 경제적 손실, 그리고 국민의 분열 등은 우리는 가히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는 세 대결이라는 막장을 향하고 있다. 양쪽에 있는 사람들은 똑 같이 대한민국 국민이며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극열하게 상대방을 저주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광화문과 시청으로 갈라진 것뿐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가장과 자녀 사이가 갈라졌다는 한탄이 나온다. 이제 냉정을 되찾고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더 이상 국력을 소모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이성적으로 방법을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박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쪽의 주장은 빨리 헌재에서 빨리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라고 주장하고, 반대쪽에서는 빨리 기각하라고 주장한다. 이쯤 되면 탄핵소추가 인용되든 기각되든 그 후유증은 또다시 목숨을 건 반대에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결정을 한 헌재도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국민은 분열도고 국가 기관은 만신창이가 될 것을 뻔히 보면서 브레이크 없는 두 열차가 마주보고 달리는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결과는 비극 밖에 없다. 상처만 입고 영광은 없는 불행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불 보듯 뻔히 알면서 컨트롤이 안 된다. 이제라도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사실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 탄핵소추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당시 야당에서 시작하였다. 불행 중 다행스럽게 소추는 기각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야당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소추 하였다. 앙갚음을 제대로 한 셈이다.
만약에 이것이 인용되어서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다면 헌정사에서 처음 파면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탄핵소추 측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환영하겠지만 그 반대 입장에 선 사람들은 언젠가는 이를 되갚아 주려고 목숨을 걸고 달려들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언젠가는 꼬투리를 잡아서 또 탄핵소추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릴 것이다. 탄핵소추의 악순환이 우리 정치판의 짐이 될 것이다.
용서는 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화해도 힘 있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 밀어야 한다. 지금 힘 있는 쪽은 촛불 쪽이고 야당이다. 이들은 그 동안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힘없는 자기들을 압박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이 지금 힘을 갖게 되었다. 이제 그 동안 당한 앙갚음을 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렇게 비판하는 과거에 자기들을 압박했던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해결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박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헌재에서 기각하는 방법이 아니라 야당, 특히 야당지도자가 이를 제의하고 야당 사람들을 설득하여 탄핵소추를 취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탄핵이 인용된다면 5월 선거가 되고, 탄핵 소추를 취소하면 10월 선거가 될 것이다. 불과 선거가 5개월 늦어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5개월만 참아 주면 된다.
지금 탄핵소추를 취소한다고 하여도 박대통령은 남은 기간 제대로 대통령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정치적으로는 만신창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야당이 목표로 하는 바대로 대통령을 무력화한 것은 변함이 없겠지만 탄핵 반대자들의 극열한 반대를 피할 수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통 큰 집단으로 인식되어 국가 경영의 자격이 있다고 인식될 것이므로 인기는 상승할 것이다. 그렇다면 10월에 치러지는 선거는 따 놓은 당상으로 야당이 이긴다. 국민 화합의 방향도 만들게 된다. 한 번에 큰 인물로 부상될 것이다.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철회하는 동시에 박대통령과 여당 측에 대하여 함께 87년 체제의 헌법을 먼저 고치자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이 제안은 여당이 안 받을 리가 없을 것이니 야당 주도로 새로운 헌법을 만들 수 있고, 그 헌법에 따라서 선거를 할 수 있다.
이것은 몇 가지의 좋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대통령 탄핵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된다. 두 번째는 그토록 모든 사람이 원하는 여야 합의를 통한 정치의 시발점이 된다. 셋째로 갈라질 대로 갈라진 국민과 국론을 통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넷째로 국제적으로 한국인의 정치 능력을 인정받아 안정된 국가라는 좋은 이미지를 준다. 다섯째 모든 국민이 정치는 통 큰 정치인에게 정치로부터 경제건설에 매진할 수 있게 된다. 여섯째로 정치권이나 정치가들은 가장 저질이며 부패한 그룹이라는 일반인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 무엇보다도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되는 헌법재판소가 불신 당하여 국가 기관이 제대로 일 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없어진다. 헌재를 살리는 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를 5개월 연장해 주는 대신 얻은 것은 너무 많다. 이 방법을 좀 써볼 야당지도자는 없는가?    
[2016/10/21]

≪속자치통감≫ 번역계획
      ≪속자치통감≫ 번역계획서

사업명 :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의 국역(國譯) 사업
기  간 : 3년 ~ 5년
사업진행자 : 권           중                달(중앙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분  량 : 원문 총 220권
          번역 원고량 : 약 200자 원고지 66,000매
          종이책으로 출판했을 때의 분량 : 600쪽짜리 22책

≪속자치통감≫의 개요와 번역의 의미 :
        북송대에 사마광의 ≪자치통감≫이 편찬되어 전국시대부터 오대말까지 1,362년간의 편년체 역사서가 나옴으로써 중국사학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때까지 역사서의 대종은 개인 인물사의 집합 같은 기전체(紀傳體)로 되어 있었는데, 이를 편년체로 바꾸어 서술한 것이다. 기전체는 개별 인물의 전기를 쓰고 이를 성격별로 분류하여 묶어 놓았으며, 그 외에 각 분야별 사항을 다룬 서(書) 혹은 지(志)도 주제별 분류 서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종전의 기전체 역사서는 여러 책을 묶어 놓은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 시대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어려웠다.
        이러한 단점 때문에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과 사회, 국가의 모습을 이해하고 자 하는 사람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전체는 분야별 책의 집합체라는 편찬 방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역사를 중복 서술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서는 공연히 지루한 언어의 중복으로 많은 분량으로 쓰이게 되니 독자들이 이를 읽는데 노력의 낭비를 초래하였다.  그러던 것이 북송대에 사마광에 의하여 ≪자치통감≫이 편찬됨으로 해서 역사학에서 사반공배(事半功倍)의 효과를 내는 새로운 서술방법이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 서술방법은 후대 역사가들도 이를 모방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서 남송대에는 ≪자치통감≫에서 다루지 못한 북송이후의 역사도 같은 방법으로 서술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쉽게 이루어 질 수 없었던 것은 역사를 종횡으로 편집 서술한다는 일은 고도의 사식(史識)과 사재(史才), 그리고 재정적 뒷받침을 받는 역사가를 기다려야 했다.
        예컨대 사마광이 죽고 난 바로 직후인 남송대에 이르러서 역사가 이도(李燾)는 북송시대의 역사를 ≪자치통감≫ 형태로 저술하고자 하였으나, 이에 이르지 못하고 그 전단계인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을 편찬하는데 그쳤다. <장편(長編)>이란 본 사서(史書)를 편찬하기 전단계로, 사료를 연도별로 정리하는 단계인 바, 이로 보아 남송대에는 ≪자치통감≫을 모방한 ≪자치통감≫ 이후의 역사를 편찬하고자 하는 열망을 있었으나 이루지 못한 셈이었다.
        그 후에도 이러한 열망을 계속되어 ≪자치통감 속편(資治通鑑續編)≫, ≪송원자치통감(宋元資治通鑑)≫, ≪자치통감후편(資治通鑑後編)≫ 등이 편찬되었으나 ≪자치통감≫을 이어갈만한 역사서의 편찬은 나오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청대 18세기에 이르면 중국에서는 정치한 학문을 추구하는 고증학이 발달하여 가히 중국 역사상 최고의 학문적 전성기가 도래하였다. 이때에 철학, 문학, 사학은 물론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금석학, 성운학, 문자학, 지리학이 발달하고 모든 학문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필원(畢沅, 1730 ~1797)이 20여년에 걸친 노력 끝에 송, 요, 금, 원 네 왕조 411년간의 역사를 사마광의 ≪자치통감≫ 체례로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편찬하는 데는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편찬하면서 했던 바 대로 모든 역사서와 사료를 다 수집하고 나서 엄격한 기준으로 서술해 나갔다.
        이 책의 찬자(撰者) 필원은 청대의 대표적인 고증학자로 ≪속자치통감≫의 편찬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주진영(周震榮)과 장학성(章學誠)이 ≪사적고(史籍考)≫를 편찬하도록 도왔고, 송민구(宋敏求)의 ≪장안지(長安志)≫를 친히 교정하였으며, 섬서에 있을 때에는 ≪관중금석기(關中金石記)≫를 내고, 하남에 있을 때에는 ≪중주금석기(中州金石記)≫를 냈으며, 호광총독으로 있을 때에는 엄관(嚴觀)을 초빙하여 ≪호북금석시(湖北金石詩)≫를 냈고, 산동에 있을 때에는 완원(阮元)과 같이 ≪산좌금석지(山左金石志)≫를 저술하는 등 18세기 청대 고증학의 대표였으며, 그의 문하에는 당시 일재달학지사(軼才達學之士)가 다 모여 있었다. 그 가운데 ≪문사통의(文史通義)≫를 편찬한 장학성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속자치통감≫은 청대 고증학의 총합 체라고 할 수 있다.
         이≪속자치통감≫의 간각(刊刻)은 처음에 103권만 간행되다가 필원이 정치적인 이유로 적몰되었기 때문에 중단되었다. 그 후에 원고가 산일되었던 것을  풍집오(馮集梧)가 매집(買集)하여 드디어 220권 전체를 간행하였는데, 그것은 청 건륭 52년(1787년)이다. 따라서 이 책의 완성은 18세기 고증학으로 다져진 중국의 학문적 수준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책이 송, 요, 금, 원대의 동아시아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점에서 그와 병존하였던 고려시대를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저서이다. 뿐만 아니라 청대에 발달한 고증학의 학문적 결정체라는 점에서 청대 고증학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가장 적절한 역사서라 할 것이다.
        이러한 책을 한글로 번역하여 소개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학과 학문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 올리는데 대단히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업비용의 조달 :
        1 사업 책임자 : 권중달
        번역 사업이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든지 그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완성한다. 이는 자치통감 전 294권을 번역하여 출간한 경험으로 진행방법과 방향, 지휘방법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 가능하다.
        2. 사업비용의 개요 : 10억 원
                지원자가 나타날 때에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3. 사업비용의 조달 : ≪자치통감≫이 이미 국역되어 10년간 꾸준히 독자로부터 읽히고 이용되는 점을 감안할 때에 ≪속자치통감≫이 완역된다면 이에 대한 관심은 시너지효과를 나타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것으로 사료된다. 이는 ≪자치통감≫ 독자들로부터 꾸준히 ≪속자치통감≫을 번역해 달라는 요구로 알 수 있다. 이 책이 완간된다면 ≪자치통감≫과 함께 최소한 100년은 한국 독자들에게 읽힐 뿐만 아니라 문화적 업적으로도 길이 남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이 사업에 지원할 사람이 있다면 이 문화적 사업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원자에 대하여서는 도서에 분명히 밝혀 이 책의 명예와 함께하도록 할 것이다.
        현재 이 사업을 추진할 충분한 재원이 없는 상태이어서 우선은 삼화고전연구소를 통하여 개인적으로 이 작업에 착수할 것이며 이 사업에 지원자가 나타난다면 이 사업은 보다 활성화 되어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4. 원고가 완성 되는 대로 순서에 따라서 e-book 형태로 먼저 소개하고, 이어서 paper-book으로 간행하되 현재 출간된 ≪자치통감≫의 예에 따른다.
[2016/10/21]

당대 환관의 감군과 군사통제
대륙전략연구소
대륙전략 14호(2016년)
에 당대 환관의 관군과 군사통제를 제목으로 논문발표/
안사의 난 이후 절도사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감군은 환관을 임용하므로써 결과적으로 당대에 환관이 군사권을 쥐게 되었음을 밝힌 것임
[2016/10/21]

안보포럼에 토론자로 참석
2016년 9월 21일
대륙전략연구소 안보포럼 토론자로 참석
주제: 시진핑시대의 중국인민해방군의 영도 체제
[2016/07/17]

팡리즈 자서전 출간
역자의 말

        순수함에서 나온 최고 권력자와 대결했던 용기


2013년 5월 13일자 우리나라 신문에 ‘중국 반체제 물리학자인 팡리즈(方勵之)의 사후 자서전이 지난 3일 홍콩에서 출간됐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5일 보도했다.’는 아주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그것도 책이 출간된 지 10일이 지난 다음에.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고, 그 밑바탕에는 팡리즈가 우리와 별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일 터이다. 그런데 역자는 이 기사를 보자 바로 이 책을 보아야겠고,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우리나라에 꼭 소개해야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역자는 이미 1987년에 팡리즈의 연설문집 ‘우리는 지금 역사를 쓰고 있다.’가 타이완에서 출간되었을 때에 읽을 기회를 가졌고 번역 출간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때는 한참 우리나라에도 민주화의 열풍이 불고 있었고, 드디어 우리는 시민의 힘으로 6.29를 끌어내는 우리 역사에 최초로 대중의 힘으로 권력자를 굴복시킨 그 시기에 팡리즈의 연설문은 바로 우리 사회에 적용하여도 틀림없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여건이 맞지 않아서 ‘우리는 지금 역사를 쓰고 있다.’를 소개할 기회가 없었는데, 그의 자서전이 나왔으니까 이번에도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판권을 확보하고 번역소개하려는 결심을 굳혔다.
왜 팡리즈에게 그리 열망하는가? 그는 순수한 학자다. 그러기 때문에 학문적 연구의 욕구가 누구보다 강했다. 그런데,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제약을 받게 되자 중학교 때 이미 공산조직에 가담하였던 그가 오히려 공산당의 정책에 반대하게 된다. 공산당조직에 가담한 것도 대중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으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고, 공산당의 정책에 반대한 것도 대중의 잘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중국 현대사에서 지식인들이 끊임없이 제기하였던 ‘과학과 민주주의’라는 두 개의 가치를 이은 사람이 된 것이다.
중국 현대사에서 ‘덕(德, 데모크라시)선생과 새(賽, 싸이언스)선생의 문제는 중국의 현대화과정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문제의 하나이다. 그런데, 그 계승자가 바로 팡리즈였으니, 그를 빼 놓고 중국현대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임은 자명하다. 그 외에도 우리가 이러한 중국 현대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중국과 이웃하고 있는 나라라는데 더욱 절실한 것이다.
우리는 이웃하고 있는 나라에 독재자가 나타났을 때에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 도요토미가 일본열도를 통일하고 권력을 장악하였을 때나, 도조정부가 독재 권력을 장악했을 때에 이웃인 우리를 침략했다. 중국에서는 한무제가 독재권을 장악하자 흉노정벌과 고조선침략이 있었고, 수나라가 중국을 400년 만에 통일하고 그 여력은 고구려 침략으로 나타났으며, 당태종의 경우도 마찬 가지였다.
이들 이웃나라 독재자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실패하였지만, 그들이 실패 했다고 하여 우리가 입은 손해가 보상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는 실패한 원인을 검토하면서 독재시스템에서 찾고 있었다. 오늘 21세기에도 여전히 과거 그 시절처럼 우리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웃을 통제하는데 기여하기 보다는 이웃의 상황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웃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우리의 생명과 관계된 일이다.
그래서 역자는 이웃에서 정책 결정의 시스템이 독재적으로 결정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통 팡리즈는 소련의 반체제작가 사하로프에 비견되기는 하지만 팡리즈에 대하여 더 깊이 관심을 가져야 되는 이유는 그가 우리의 가까운 이웃인 중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너무도 가까이 있는 나라 중국의 민주화여부는 우리의 사활과 관계가 있는데, 그렇다면 민주와 자유운동의 계승자라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가 주목해야 할 인물인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내야한다고 생각한 이유이다.
그러나 팡리즈에게 붙여진 이름을 보면 그의 전기는 당연히 심각하고, 비장할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그의 일생 자체가 너무 극적인 요소를 많이 갖기 때문인지 전체적으로는 한편의 파란만장한 대하소설을 보는 느낌이었다.
중국이라는 관료체계 속에 있는 사회에서 일개 교수가 완리 부총리라는 최고 권력자와 대중 앞에서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 그렇고, 시청 앞에서 밤늦게 까지 연좌데모를 하는 학생들을 교정으로 돌려 보내어야하는 상황의 전개와 반전도 그러하다. 최고의 권력자 덩샤오핑과 맞서며 민주와 자유를 쟁취하려는 장면이 그렇다.
뿐만 아니다. 그는 늘 너무도 심각한 상황을 만나야 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서술하면서  심각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에서도 미소 짓게 하는 위트로 넘어가고 있다. 우선 13개월여를 미국대사관으로 피난생활을 끝내고 중국을 떠나는 긴장된 순간을 “12시 40분 우리는 순조롭게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정부는 미국전용기에 중국 최대의 범죄자를 태워 보냈다. 황당한 일이라고? 세상은 본래 황당한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써나갔다. 너무 시니컬하다.
또 그가 미국대사관에 있었던 기록을 하면서 “384일 10시간 30분”이라고 분까지 기록했다. 그가 과학자여서 정확한 것을 생명으로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말이 역자에게는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다가 왔다.
또 정치가가 우중(愚衆)을 이용하는 모습을 염두에 두었는지 프랑스 대성당을 보면서  ‘데마고기’를 떠 올린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아무리 우중이라도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비록 우중이 잘 못 선택한다손 치더라고 그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중은 점점 더 깨달아 갈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부르짖은 사람 가운데 상당한 많은 사람이 정치일선에 뛰어들어 선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 후 그들의 정치행태를 통하여 전에 부르짖은 함성은 그냥 자기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정치적 행위는 아니었던가 의심을 갖게 했다. 그러기에 설혹 정의나 민주를 순수하게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자기 입지와 이익을 위한 정치적 행위로 보게 만들었다.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사회가 순수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비(非) 순수사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팡리즈같이 순수한 학자이고, 순수한 민주, 자유 운동가를 접하면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난다. 미국대통령의 손님으로 미국대사관에 가서 13개월을 산 사람이었지만 미국대통령을 이용하여 특권을 누리려고 한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 교수가 되어서도 손수 이삿짐을 날라야 했던 사람이었다. 팡리즈의 책 한 권을 무단 가져가고 돌려주지 않았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자기를 비난하였던 중국의 노벨 평화상을 받은 류샤오보의 시상식에 참석한 순수한 사람이었다.
또 팡리즈는 끝까지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과 대결한다. 덩샤오핑이 죽고 나서 에즈라 보겔이 쓴 <덩샤오핑의 고친 중국>이라는 덩의 평전을 보고 그는 덩샤오핑의 성과라는 것 뒤에 숨겨진 비밀을 서평으로 발표하므로 죽은 자와 대결하기도 한다. 그는 여기에서 보겔이 남(인민)의 공로를 가로 채다가 권력자(덩샤오핑)에게 주는 전기기록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은 팡리즈를 자기 통치의 방향에 방해가 된다고 파문했던 덩샤오핑도 파문을 당하면서도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잘 못 된 것이라고 지적한 팡리즈, 두 사람은 이미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이만한 지식인과 이만한 대결구도는 두고두고 흥밋거리이며 연구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우리 출판계의 상황에서 본다면 이 책을 출판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나 학계에 필요하다면 내야한다는 생각이고, 아무리 어려워도 꼭 필요하다면 내는 것을 보고 격려해 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에 힘을 얻어 이 책을 내게 한 것이라고 본다면 이 책은 그분들의 공로이다. 삼가 독자 여러분의 질정을 기다립니다.
        2016년  8월   일
        역자를 대표하여 권        중        달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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