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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멸망의 싹을 만든 진시황의 법가 우대정책
진나라의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지 11년 만인 기원전 210년에 진시황은 수도 함양에서 작은 아들 호해(胡亥)를 데리고 천하 순수(巡狩) 떠났다. 일행은 운몽(雲夢, 현재의 호북성안륙현)을 지나서 장강에서 배를 타고 단양(丹陽, 현재의 안휘성 당도현)을 지나서 전당(錢唐, 현재 의 절강성 항주시)까지 갔다. 다시 회계(會稽, 현재의 절강성 소흥시)까지 갔다가 북쪽으로 올라와서 평원진(平原津, 현재의 산동성 평원부근)에 이르렀는데, 병이 났다.
원래 시황제는 죽는다는 말을 싫어하여 여러 신하들은 감히 시황제가 죽고 나서 해야 할 일들은 하지 못하였다. 병이 더 심하여지자 중거부령(中車府令)이며 부새(符璽)를 관리하는 조고(趙高)에게 큰 아들인 부소(扶蘇)에게 편지를 내려 보내게 하였는데, 그 편지에는 ‘빨리 와서 상사(喪事)에 참여하고 함양에 모여서 장사지낼 지어다.’라고 쓰게 하였다.
편지를 다 써서 봉함하는 일까지 마쳤고 편지를 부칠 책임이 있는 조고의 처소로 보냈는데 아직 사자를 통하여 부소에게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시황제는 사구(沙丘, 지금의 하북성 평향현)의 평대(平臺)에서 죽었다.
이 때에 승상인 이사(李斯)는 황상이 밖에서 죽었기 때문에 여러 공자(公子)들이 천하 사람들과 더불어 변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이를 비밀로 하고 국상(國喪)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棺)을 온량차(溫涼車)에 싣고, 과거에 진시황이 총애하던 환관을 태워서 이 수레를 호위하게 하였다. 온량차란 문을 열었다 닫았다하여 수레 안의 온도를 조절하게 설계된 수레였다.
이렇게 하고 함양으로 돌아가는데 이르는 곳에서는 식사도 올리고 백관들이 사건을 보고하기도 하는 것은 전에 살아 있을 때처럼 하고, 환관은 수레 안에서 상주(上奏)하는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하게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호해와 조고 그리고 총애를 받았던 환관 5 - 6 명뿐이었다.
애초에 시황제는 몽씨(蒙氏) 집안사람들을 존중하고 총애 하고 신임하였다. 그리하여 몽씨 집안사람인 몽념(蒙恬)은 밖에 일을 처리하는 장수로 삼았고, 몽의(蒙毅)는 항상 중앙에 살면서 중요한 계획에 참여하여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럽다.’고 칭찬을 받았다. 그래서 여러 장상(將相)들은 그들과는 다투지 아니하였다.
한편 조고라는 사람은 나면서부터 궁형(宮刑)을 받았는데, 시황제는 그가 강력한 성격을 갖고 있고, 옥사(獄事)를 다루는 법에 통달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를 발탁하여 중거부령으로 삼고 그에게 둘째 아들인 호해에게 옥사(獄事)에 관한 일을 가르치도록 하였고, 호해도 그를 총애 하였다.
한번은 조고가 죄를 지어서 시황제가 몽의로 하여금 그것을 처리하게 하자 몽의는 조고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시황제는 조고가 민첩하게 일을 처리하였기 때문에 그를 사면하고 관직도 회복시켜 주었다. 이리하여 조고는 호해의 총애를 받으면서 또한 몽씨 집안을 원망하게 되었다.
마침 시황제가 죽은 것을 이용하여 조고는 호해를 설득하여 ‘시황제가 부소를 주살하고 호해를 태자로 삼으라고 했다고 하라.’고 하자 호해는 이를 허락하였다. 다음으로 조고는 승상인 이사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장자인 부소가 황제로 등장하면 몽염이 승상이 되고 그대는 승상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이들은 시황제의 편지를 고쳐서 호해를 태자로 삼고 부소에게 자살하라고 하는 옥새를 찍어서 보냈다.
이 고쳐진 편지를 받은 부소는 이를 사실로 알고 자살하려 하자, 몽염이 단 한 명의 사자가 온 것을 가지고 믿고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부소는 아버지가 죽으라고 했으니 더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자살하였다. 그 후로 조고는 몽씨 집안사람들을 제거해 나갔고 이사조차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제거하였다.
호해는 진나라의 2세 황제가 되었고, 조고는 중승상이 되어 진(秦)나라의 권력을 오로지 하였다. 그러나 여러 신하들이 사구에서 시황제의 편지를 바꾼 일을 알고 자기의 말을 듣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리고 여러 신하들을 시험하기로 하여, 사슴을 한 마리 가져다가 2세 황제에게 헌납하고, ‘이것은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2세 황제인 호해는 웃으면서 ‘승상이 잘 못 알았소. 사슴을 말이라고 말하시오?’ 라고 하고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떤 이는 침묵하였고, 어떤 이는 말이라고 하여 조고의 뜻을 좇아서 사슴이라고 하였다. 그런 후에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들을 뒤에서 법망에 걸리도록 조치하였다. 그 후에 모두 조고를 두려워하였고, 조고의 허물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고는 여러 사람들을 볶아쳤다. 그리고 2세 황제에게 건의하였다. ‘폐하께서 법을 엄격하게 하시고 혹독한 형벌을 시행하고 죄 지은 사람을 서로 연좌하게 하여 대신들과 종실의 사람들을 다 죽이십시오. 그런 다음에 이미 망한 나라의 유민을 거두어 임용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며 천하 사람들을 귀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돌아가신 시황제의 옛날 신하를 다 제거하시고, 폐하께서 친하다고 여기고 믿는 사람들로 바꾸어 임용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음덕이 폐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이리하여 열두 명의 공자(公子)와 두 명의 공주(公主)가 몽둥이찜질을 만나서 죽었고, 이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은 헤아릴 수가 없었다. 공자인 장려(張閭)도 구금되었는데, 2세 황제가 사자를 보내어 ‘그대는 신하노릇을 아니하였으니 그 죄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하고 다짜고짜 죽이려 하였다.
장려는 ‘궁궐에서 예의를 지키는 일이나 서열을 지키는 일에서나, 실수하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신하노릇을 못했다고 하느냐’라고 말하였다. 사자는 할말이 없자 ‘저는 명령을 받아서 좇을 뿐입니다.’라고 할뿐이었다. 장려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늘아!’라고 세 번 부르짖고 자살하였다.
종실들은 크게 두려워하여 공자인 고(高)라는 사람은 달아나려고 하다가 잡힐까 두려워서 ‘시황제가 죽을 때 따라 죽지 못하여 죽겠으니 시황제가 묻힌 여산의 끝머리에 장사를 지내 주십시오.’라고 편지를 올렸다. 이 소식을 들은 조고는 호해에게 ‘신하들이 죽음을 걱정할 여가도 없게 하였으니 어찌 모반을 꾀하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법이라는 이름을 빌어서 모든 사람을 숨을 쉬지도 못하게 해 놓고 아방궁(阿房宮)을 다시 짓고, 무사 5만 명을 징집하여 함양에 주둔시키며 개와 말 그리고 금수(禽獸)를 길렀다. 이것들에게 먹일 것이 모자라자 군현(郡縣)에서 조달하게 하였는데 콩, 조, 잡곡을 함양으로 운반하는 사람은 스스로 양식을 준비해야 하였다. 이리하여 함양 근처 300리 안에서는 곡식을 얻어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일사불란하다고 조고는 믿었다. 그래서 법으로 모든 것을 다 처리하였다. 그래서 반대하는 사람을 모조리 법이라는 이름으로 잡아서 죽였다. 결국 사람들은 그 법망 때문에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되어서 조고의 말대로 모반을 꾀할 여유조차 없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조고와 2세 황제는 2년을 더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호해는 조고의 압박을 받고 자살하고, 조고는 부소의 아들인 자영(子嬰)에게 죽는다. 그리고 중국을 통일한 첫 번째의 왕조인 진(秦)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이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진(秦) 나라가 왜 이렇게 쉽게 망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진시황이 법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법을 잘 다루는 조고에게 일을 맡긴데 있기도 하다. 법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늘 날에도 도처에 널려 있으니 《자치통감》 권 7에 실려 있는 이 고사는 한번 읽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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