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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무모하게 원수를 갚으려 한 연나라 태자
진시황(秦始皇)이 전국시대를 통일하기 약 10년 전쯤에 있었던 연(燕)나라 태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보다 앞서서 연나라의 태자인 단(丹)은 그 이웃 나라인 조(趙)나라에 인질로 가 있었다. 이 때에 뒤에 진(秦)나라로 돌아가서 장양왕(莊襄王)이 된 이인(異人)이라는 사람도 조나라에 인질로 와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같은 처지에 있는 터라 피차에 잘 지냈다.
시간이 지나자 이인은 진나라로 돌아가서 왕이 되었고, 연나라의 태자인 단은 다시 진(秦)나라에 인질로 가 있게 되었다. 연나라 태자는 과거에 조 나라에서 고생을 같이 했던 경험을 가진 진나라의 장양왕이 자기에게 잘 대우해 줄 것을 기대 했지만 그러나 장양왕은 예(禮)를 갖추어 대우하지 않았다. 단은 화가 나서 진나라에서 도망하여 자기 나라인 연나라로 돌아갔다.
연나라에 돌아 온 태자 단은 진(秦)나라에 보복을 하고자 하여 그의 스승인 국무(鞠武)에게 물었다. 국무는 태자인 단에게 ‘보복을 하려거든 서쪽에 있는 한(韓), 위(魏), 조(趙) 세 나라와 맹약을 맺고, 남쪽으로는 제(齊)나라와 초(楚)나라와 관계를 맺으며, 북쪽으로 흉노(匈奴)들과 유대를 강화하라. 그러고 나서 진나라를 도모하라.’고 충고하였다. 실력을 갖춘 다음에 보복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태자는 이 말을 듣고, ‘스승님의 계책은 날짜가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아마도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보복할 마음만 급하여 실력 키울 생각을 못하는 것이었다. 그 후 얼마 있다가 진나라의 장군인 번어기(樊於期)라는 사람이 자기 나라인 진나라에서 죄를 짓고 연나라로 도망하여 왔다. 태자는 그에게 집을 마련해 주고, 후하게 대우하면서 머물게 하였다.
이를 본 스승인 국무가 말하였다. ‘무릇 진나라의 왕은 포악한 사람인데, 우리 연나라에 대하여 노여움을 쌓아 두게 하면 우리를 벌벌 떨게 할 것입니다. 게다가 번(樊)장군이 우리 연나라에 있게 된다면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빨리 번 장군을 흉노로 보내십시오.’
태자는 말하였다. ‘번 장군은 천하에서 아주 어려운 처지가 되어서 나 단(丹)에게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것보다도 지금 나는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릴 시기라고 생각 되는데 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태자는 이 기회에 군사를 동원하여 진나라를 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것이었다. 국가를 위하여 인정을 끊으라는 스승의 말에 인정을 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힘 있는 나라를 공격까지 하여야 한다고 대답한 것이다.
국무는 이를 말렸다.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안전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고, 화(禍)를 만들어 보는 것은 복(福)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계획이 낮으면 원망만 깊어지게 됩니다. 한 사람의 새로운 친구와 교제하려고 국가에 큰 해가 닥칠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원망을 북돋아서 화를 당할 일이 닥쳐오라고 돕는 것입니다.’
태자는 스승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위(衛)나라에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선물을 보내며 그럴 듯한 말로 유혹하였다. 연나라 태자인 단은 형가에게 ‘당신 나라인 위(衛)나라나 우리 연나라를 위협하는 진(秦)나라 왕을 죽일 수만 있다면 진나라를 혼란 속에 빠질 것이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진나라에게 침략을 받는 여러 나라들이 합하여 진나라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고 하자 형가도 동의하였다.
연나라 태자는 형가를 극진히 대접하고 있는데 정세는 바뀌어 진 나라에는 진시황(秦始皇)이 등장하여 조(趙)나라를 멸망시켰다. 이에 더욱 위협을 느낀 태자 단은 형가를 보고 진나라로 들어가서 일을 처리하도록 요구하였다. 형가는 ‘지금 내가 간다 해도 진 나라 왕이 만나 주지 않을 것이니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계책을 내었는데, 진 나라에서 도망 온 번어기 장군의 머리를 베어 함에 넣고, 또한 진 나라에 바칠 좋은 땅을 바치겠다고 하면서 그 땅의 지도를 진 나라에 보이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계책을 마련한 형가는 번어기를 만나서 ‘진나라에서 번 장군의 가족에게 몹쓸 짓 한 것을 이야기 하고 보복하자.’고 제의하였다. 번어기도 이에 동의하였다. 그러자 형가는 번어기에게 ‘당신의 목을 내 놓으면, 목을 잘라 가지고 진 나라에 가겠소. 그러면 진나라 왕이 만나 줄 것이고, 나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왼손으로 진나라 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 손으로는 그 가슴을 찔러서 번어기의 원수를 갚고, 연나라의 수치를 씻겠소.’ 하였다.
번어기는 이 말을 듣고, 자기 목을 잘라 가게 하려고 자살하였다. 형가는 번어기의 머리를 잘라서 함에 넣고 천하에서 제일 좋은 비수를 구하여 독약을 발랐다. 이 비수로 실험해 보았더니 이 비수에 찔려서 실만큼의 피만 나와도 그 사람은 죽었다. 이제 진 나라 왕을 공격할 준비를 다 한 셈이었다.
형가는 드디어 진(秦)나라 수도인 함양으로 갔다. 진 나라 왕은 기뻐하며 만나자고 하였다. 형가는 진나라에 바친다고 한 땅의 지도를 받들어 가지고 진 나라 왕에게 나아갔다. 그런데 소매 속에 감추어 둔 비수의 끝이 보였다. 진시황은 얼른 자리를 피하려 하였고 형가는 재빨리 비수로 왕으로 찔렀지만 소매만 자르고 말았다.
별달리 도망갈 곳이 없는 전각(殿閣)의 위여서 진 나라왕은 기둥 뒤로 숨었고, 형가는 왕을 좇아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기둥을 두고 숨 가쁘게 빙빙 돌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진 나라의 신하들은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라 어찌할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진나라 법에 신하는 무기를 가지고 왕의 전각에 올라 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나라 왕은 스스로 등에 칼을 지고 있었지만 너무 급하여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에 신하들이 ‘대왕의 등에는 칼을 지고 있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이 말을 듣고, 생각이 난 진 나라 왕은 칼을 뽑아 형가를 쳤는데, 겨우 그의 왼쪽 팔만 잘랐다. 이 때에 형가는 쓰러지면서 비수를 왕에게 던졌다. 그러나 구리 기둥만 맞추었을 뿐이었다. 결국 형가를 보낸 사람은 연나라 태자라는 것이 알려졌다.
진 나라 왕은 화가 나서 장수 왕전(王翦)을 파견하여 연(燕)나라를 치게 하니, 왕전은 조나라와 연나라의 군사를 격파하였다. 그 후 5년 뒤인 기원전 222년에 6 - 700백년의 역사를 가진 연나라는 진시황에게 멸망되었다.
연나라 태자인 단은 자기가 진나라로부터 대접 받지 못한 것에 몹시 분개하였다. 그 위에 진나라에게 자기 나라인 연나라가 수모를 받자 그것도 참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지도자란 그 참을 수 없는 굴욕으로 참으면서 자기 실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나라 단(丹)은 얕은꾀로 거대한 진(秦)나라에 대항하려고 했고, 분을 풀려고 했다가 오히려 나라를 망쳤다. 그는 애국자일까? 나라를 멸망시킨 무능한 사람일까?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미국 사람들이 참으로 싫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부당한 요구를 하니 화가 날만도 하다. 그래서 자존심도 강하고 애국심도 강한 사람이 참기 힘들어서 미국 물러가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소리를 지른다고 힘을 갖고 있으면서 물러났던 권력자나 국가는 역사 속에는 하나도 없다. 겉으로는 데모 때문에 물러갔던 것 같이 보이는 사건도 실제로는 힘이 부쳐서야 물러 난 것일 뿐이었다. 힘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이 옳지 않다. 그러나 입으로만 주장하는 정의(正義)가 힘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그것은 화(禍)의 근원이었다.
자치통감 권 6에 실린 이 이야기는 오늘 날에도 곰곰이 한번쯤 음미 해 볼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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