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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오줌 세례를 받은 범휴를 알아 본 진나라 왕


<제5화> 오줌 세례를 받은 범휴를 알아 본 진나라 왕

이번에도 전국(戰國)시대의 이야기이다. 진(秦)시황이 중국을 완전히 통일하는 기초를 세우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범휴(范睢)라는 사람이다.
범휴는 원래 위(衛)나라의 사람으로 이웃에 있는 강한 나라인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수가(須賈)라는 사람을 좇아갔다. 제나라에 가서 범휴는 제나라의 양왕(襄王)과 이야기를 하였는데, 논리 정연한 그의 변론(辯論)으로 양왕을 감동시키자 제왕은 사사롭게 금과 소 그리고 술까지 내려 주었다.
이렇게 제 나라 왕이 범휴를 후하게 대우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수가는 아마도 범휴가 자기 나라인 위(衛)나라의 일을 다른 나라인 제(齊)나라에 고(告)해 바치는 것으로 알고, 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위나라의 재상인 위제(魏齊)에게 일렀다. 이 말을 들은 위제는 화가 나서 범휴를 불러다 태형(笞刑)을 가하였다. 결국 범휴의 갈비뼈는 부러지고 이빨도 빠졌다.
범휴는 매를 맞고 죽은척하자 갈대로 그를 둘둘 말아서 변소 간에 쳐 넣고서 손님들 가운데서 술 취한 사람들에게 갈대로 싸 놓은 범휴에게 방뇨(放尿)하게 하였다.
범휴는 살아날 방도를 생각하다가 그를 지키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를 나가게만 해 준다면 내가 반드시 후하게 사례하겠소.” 이 말을 듣고 지키던 사람은 마침내 ‘범휴가 죽었으니 내다 버리게 해 달라’고 청하였고, 재상인 위제는 술에 취하여 “좋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범휴는 빠져나오게 되었는데, 위제는 후회하고 다시 불러서 잡아오게 하였지만 그러나 위나라 사람인 정안평(鄭安平)이라는 사람이 범휴를 숨겨두고 이름을 바꾸어서 장록(張祿)이라고 고쳤다.
때 마침 진(秦)나라에서 알자(謁者)인 왕계(王稽)라는 사람이 위나라에 볼 일이 있어서 갔는데, 범휴는 밤중에 왕계를 찾아갔다. 그리고 왕계는 범휴를 몰래 자기의 수레에 싣고서 자기 나라인 진(秦)나라로 돌아가서 진왕에게 범휴를 추천하였다. 왕이 그를 이궁(離宮)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범휴는 만날 장소로 가면서 지리를 모르는 척하면서 일부러 왕이 다니는 긴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 길로는 왕이 오고 있었다. 왕을 따라오던 환관들은 왕이 다니는 길에 범휴가 오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쫓아내면서 말하였다. “왕께서 지금 오고 계신다.” 이 시절에는 왕이 다니는 곳에는 잡인(雜人)들이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에 범휴를 쫓아내려고 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범휴는 짐짓 말하였다. “진(秦)나라에 어디에 왕이 있는가? 진 나라에는 다만 태후(太后)가 있고 양후(穰侯)가 있을 뿐인데,” 이 때에 진(秦)나라에는 왕이 있었지만 실제로 정치를 주관하는 있는 사람은 선(宣)태후와 양후라는 후작의 작위를 가진 위염(魏冉)이었으므로 범휴가 왕은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었다.
진(秦)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기의 정치적인 입지를 정확히 말하였으니 자기가 정치적 입지(立地)를 굳힐 방법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여 주위에 있던 사람을 물리치고,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선생! 과인(寡人)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하시오?” 과인이란 임금이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은 범휴는 그저 ‘예, 예’라고만 말하였고,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해도 마찬가지였다.
진왕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선생, 끝내 과인에게 가르쳐 주지 않을 작정이요?” 이 때 가서야 범휴는 말하였다. “감히 그리 할 수야 있겠습니까? 신은 떠돌아 다니 중에 있는 사람이어서 대왕과는 교류가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진술하기를 원하는 것은 대왕을 구해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골육처럼 가까운 처지에 두시기만 하신다면 원컨대 어리석지만 충성을 바치고자 합니다마는 대왕의 마음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 번 물으셔도 감히 대답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신이 오늘 이것을 앞에서 말씀드린다면 내일에는 뒤에서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신이 감히 피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죽음이라는 것은 사람이라면 면하지 못하는 것인데 진실로 진(秦)나라에 조금 보탬이 되고서 죽을 수만 있다면 이것도 신이 크게 원하는 것입니다. 다만 신이 죽은 다음에 천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신발을 싸들고 진(秦)나라로 향해 오려고 하지 않을까 걱정일 뿐입니다.”
범휴는 자기가 할 이야기를 보통으로 들으면 진왕은 자기를 죽일 것이겠지만 꼭 필요한 말이라고 한 것이다. 왕은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선생 이 무슨 말씀이요? 지금 과인이 선생을 얻었으니, 이는 하늘이 과인에게 선생을 번거롭게 하여 종묘를 보존하게 하려는 것이요. 일의 크고 작고에 관계없고, 위로는 태후에서 아래로는 대신에게 이르기 까지 선생께서 모든 것을 과인에게 가르쳐 주기를 원하니 과인을 의심하지 마시오.”
범휴가 절을 하니 왕도 절하였다. 범휴가 말하였다.
“진 나라는 큰 나라이고, 병졸들도 용감하니 제후(諸侯)들을 다스리고자 하면 이는 마치 한로(韓盧)라는 무서운 사냥개를 가지고 절뚝거리는 토끼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관문을 닫고 15년 동안 감히 산동지역에서 군사들을 엿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니 이는 양후가 진나라에게 충성하지 못한 짓을 꾀하는 것입니다. 또 대왕의 계책에도 역시 실수한 것이 있습니다.”
왕이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과인은 원컨대 실수하였던 계책을 듣고 싶습니다.” 이 말을 들은 범휴는 왕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그동안 진나라가 취하였던 근교원공(近交遠攻) 정책을 비판하였다. 그 동안 진 나라는 이웃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맺으며 잘 지내고, 먼 곳에 있는 나라를 치는 정책을 취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싸워서 이긴다고 하여도 땅을 한 치도 빼앗아 차지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정책을 정 반대로 쓰라고 하였다. 가까이에 있는 나라를 쳐서 영토를 늘리면서 먼 곳에 있는 나라가 가까이에 있는 나라를 도와주지 않도록 외교관계를 맺으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원교근공(遠交近攻)정책이었다. 이 정책에 따라서 진(秦)나라에 가까이에 있던 한(韓)나라나 위(魏)나라를 치라고 하였다. 그리고 멀리에 있는 초(楚)나라나 조(趙)나라 혹은 제(齊)나라와 친하게 지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진왕은 감탄하였다. 그리고 범휴를 객경(客卿)으로 삼고 군사에 관한 일을 함께 논의하였다. 그 후에 범휴는 계속하여 진왕에게 여러 정책을 제시하였다.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범휴는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고, 진 나라에서 그동안 정치를 전횡하여 온 태후를 폐위시켰다. 또 권력을 휘두르던 양후와 고릉군, 화양군, 경양군 등도 관문 밖으로 내 쫓았다.
진 나라가 강해지자, 이웃 위(魏)나라에서는 진나라로 수가를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범휴는 하인차림으로 수가를 만났더니 수가는 범휴를 불쌍하게 여기고 자기의 옷을 한 벌 주었다. 그러나 곧 그가 진나라의 재상인 것을 알았다. 사신을 영접하는 연회에서 범휴는 위나라의 사신인 수가에게 자기에게 옷 한 벌을 주어서 목숨을 살려 준다고 하면서 위나라 재상 위제의 목을 가져오지 않으면 위나라 수도를 도륙(屠戮)하겠다고 통보하였다.
수가가 위나라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이야기 하니 위나라 재상인 위제는 조나라로 도망하여 평원군의 집에 숨어 살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자치통감 권 5에 나오는 것이다. 진나라의 왕이면서도 외국에서 온 범휴에게 무릎을 꿇고 지혜를 구하였던 사람은 소양왕(昭襄王)이다. 이 사람은 50여 년간 진 나라를 통치하면서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바보 같은 위나라의 재상 위제는 인재를 몰라보고 오줌세례를 퍼 부었지만 일국의 제왕이면서 인재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있었던 진나라 왕은 이 인재를 거두어 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자기 실력이 없어도 좋지만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라도 있다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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