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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죽은 천리마를 사들인 임금과 오랑캐 복장을 입은 중국 임금
지난 호에 계속하여 중국의 전국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연(燕)나라는 지금 북경 근처를 중심으로 있던 전국 7웅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 나라에 내란이 일어나자 지금의 산동성 제남 지역에 있던 이웃 제(齊)나라가 공격하여 연 나라의 왕인 쾌(噲)와 태자인 자지(子之)까지 죽였다.
그 후에 연 나라 사람들은 소왕(昭王)을 세웠다. 소왕의 책임은 막중하였다. 먼저 내분으로 파괴된 뒤였으므로 이 혼란 속에서 죽은 사람과 고아가 된 사람들을 찾아서 위로하고 백성들과 고락을 함께 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국가를 일으키는 것이 재물이 아니고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있는 돈을 다 풀어서 현명한 사람들을 구하였다.
그리고 재상인 곽외(郭隗)에게 말하였다. “제(齊)나라는 우리나라에 내란이 난 틈을 타서 우리 연(燕)나라를 습격하여 파괴하였소. 나는 우리 연나라가 땅도 작고 힘도 적어서 보복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진실로 현명한 선비를 얻어내어 함께 나라를 경영하여서 먼저 돌아가신 왕의 수치스러움을 설욕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요. 선생은 그리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데려다가 섬기게 해 주시오.”
이 말을 들은 곽외가 대답하였다. “옛날에 어떤 임금이 천금(千金)이라는 많은 돈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천리마를 구해 오게 하였습니다. 심부름을 맡은 사람이 천리마가 있는 곳에 가 보니 말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죽은 말을 500금(金)을 주고 사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를 본 임금이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말하기를 ‘죽은 말도 사 들이었는데, 하물며 산 말을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말이 이제 곧 도착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이 말을 한지 1년이 안 되어 천리마가 세 필이나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지금 대왕께서 반드시 선비를 모시고 싶다면 저 곽외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저 곽외보다 현명한 사람이 어찌 천리를 멀다 하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소왕은 곽외를 위하여 궁을 고쳐주고 스승으로 섬겼더니 선비들이 다투어 연나라로 몰려들었다. 이 때에 낙의(樂毅)는 위(魏)나라에서 왔고, 극신(劇辛)은 조(趙)나라에서 달려 왔는데 소왕은 낙의를 아경(亞卿; 부재상)으로 삼았다.<제3화 끝>
또 조(趙)나라의 무령왕(武靈王)의 이야기 이다. 조 나라는 중국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나라이다. 전국시대에는 무엇보다도 무력을 증강시키는 것이 중요하였지만 중국은 농경족이라 전투를 하는데 익숙하지도 못하였고 입은 복장도 전투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이에 비하여 북쪽의 오랑캐인 흉노는 유목족이어서 항상 말을 탔고, 복장도 말 타기에 적당하였기 때문에 전투에서는 중국 사람들보다 우수하였다.
조나라로서는 전국시대에 여러 나라와의 경쟁 속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서는 복장도 흉노족의 복장으로 바꾸어 입고 말을 타는 연습도 시켜야 했다. 그러나 흉노족의 복장을 입고 습관을 갖는 것은 중국 사람들에게는 상스러운 짓이고, 점잖지 못한 일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조나라가 주변의 강대국을 상대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무령왕은 북쪽으로 흉노를 쳐부수려는 생각을 갖고 출발하였다. 먼저 북쪽으로 가서 중산(中山, 지금의 하북성 영수현일대)를 경략하고 방자(房子)를 거쳐서 대(代)지역까지 갔다. 그리고 다시 북쪽으로 더 가서 무궁(無窮)에 갔다가 서쪽으로 가서 황하까지 갔다가 황화산에 올라갔다.
여기서 그는 비의라는 신하와 더불어 흉노족이 입는 호복(胡服)을 입고 백성들에게 말 타는 방법을 가르칠 계획을 세우고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이 비웃더라도 현명한 사람은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비록 온 세상을 밀어붙여서 나를 비웃더라도 나는 흉노들이 사는 중산은 반드시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호복을 입히라고 하였다.
그러나 조나라 사람들은 호복입기를 원치 않았다. 특히 공작(公爵)이란 지위를 가진 성(成)은 아프다고 하면서 조회에 나오지도 않았다. 아마도 호복 입기가 싫어서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를 본 무령왕은 사람을 시켜서 공작인 성을 초청하며 말하였다. “집에서는 부모의 말을 듣고, 나라에서는 임금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이제 과인(寡人, 임금이 자기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 복장을 바꾸어 입도록 가르치는데, 아저씨(성과 무령왕은 한 집안이다.)가 나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천하 사람들이 그대는 임금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라고 비난할지 모릅니다. 또 나라를 다스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호복을 입히는데 공로를 세우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작인 성은 반론을 제시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중국이란 성현들이 가르치는 곳이며 예(禮)와 악(樂)이 쓰이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먼 곳에 있는 나라들이 와서 보고, 만이(蠻夷) 같은 오랑캐들은 모범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 이것을 버리고 먼 곳의 복장을 입히려고 하시니 이는 옛날 도리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인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무령왕은 직접 공작 성에게로 가서 말하였다. “우리나라는 동쪽으로는 제(齊)나라와 중산국(中山國)이 있고, 북쪽으로는 연(燕)나라와 동호(東胡)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누번국(樓煩國)이 있고, 진(秦)과 한(韓)나라와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 타고 활 쏘는 준비가 없다면 어떻게 이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과거에 중산국은 제나라의 강한 군사를 등에 업고 우리의 땅을 침략하여 우리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물을 끌어들여서 호(鄗)지역을 포위하고 사직의 신령들을 쇠미하게 만드니, 호도 지켜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가신 임금께서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과인은 사방의 국경지역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에 대비하고 중산국에 보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저씨가 중국 풍속을 고집하여 복장을 안 바꾸려는 것은 호 지역에서 일어났던 부끄러움을 잊은 것입니다. 이것은 과인이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령왕은 자기들의 조나라가 강한 나라에게 둘러 싸여 침략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것이지 그까짓 복장을 바꾸어 입는 것이 무슨 그리 큰 수치냐고 반문한 것이다. 그날로 공작인 성은 무령왕의 명령을 받아 호복(胡服)을 입고 조회에 나왔고, 그 후로 활 잘 쏘고 말 잘 타는 사람을 초청하기 시작하였다.
국가가 강성하고 융성하기 위하여 지도자가 취해야 할 모습을 보는 대목이다.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이라면 비록 죽었다고 하여도 높이 쳐주는 연 나라 소왕의 정책은 다른 나라에 있는 훌륭한 인재를 불러 오기에 충분하였다. 이 때에 온 낙의는 그 후에 교만한 제(齊)나라를 치는 데 결정적인 계책을 마련하고 연 나라의 상장군이 되어 연합군을 거느리고 제 나라를 쳤던 것이다.
그 후에 조 나라의 무령왕은 친히 일선에 나아가는 용감한 모습을 보여서 진(秦)나라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기도 하였고, 중국의 전투력을 향상시키는데 지대한 공로를 세운 사람이 되었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지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체면 때문에 실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을 헌신짝처럼 버리려는 조나라의 공작인 성(成)과 같은 사람은 정말 없는가? 이러한 사람을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하여 바보 같은 인사라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사람이 적지 않아 보이는 것은 지나친 곡해일까?
또 말로만 우수한 사람을 대우한다고 하면서도 우수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일을 없는지 살펴 볼 일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이, 나라가 쇠잔해 가고 있다고 생각되거든 무령왕과 소왕의 일은 배워 봄직한 것이 아닐까? 이 이야기는 자치통감 3권에 실린 것이다.<제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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