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백성들의 싸움을 자기의 잘못으로 여긴 한현수
이번 회에는 전한(前漢) 선제(宣帝)시대에 살았던 한연수(韓延壽)라는 사람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연수가 처음에 영천(穎川)태수가 되어 가보니, 그의 전임자인 조광한(趙廣漢)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태수로 오자마자 부정부패를 막는다고 관리와 백성들에게 서로 고발(告發)을 하게 하는 정책을 썼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서로 원망하거나 복수하고 있었다.
한연수는 우선 예의(禮義)가 무엇인지를 가르쳤다. 의례(儀禮)도 가르쳤고, 예물(禮物)에 대하여서도 서로 논의하며 법도(法道)에 맞도록 하였더니 백성들은 잘 따랐다. 그리고 가짜 물건 파는 사람들에게 이 물건들을 모두 폐기하게 하였다.
이 이후에 다시 동군(東郡)태수가 되었는데, 영천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의(禮義)로 다스렸다. 현명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모셔다 예의로 대우하고, 효제(孝悌)에서 뛰어난 사람을 표창하였으며, 교육담당관인 학관(學官)을 두어 교육을 강화하였으며, 백성들에게는 날짜를 엄격히 지키도록 하고 아랫사람들에게 한 약속을 스스로 잘 지키자 백성들은 그를 경외(敬畏)하면서도 잘 따랐다. 또한 마을별로 자치(自治)하도록 하여 하급관리는 쓸데없이 시골을 다녀야 하는 수고는 적게 했고, 백성들은 관리들의 형장(刑杖)을 맞지 않아도 되게 하였다.
그가 관할하는 지역인 현(縣)의 치안책임을 맡은 현위(縣尉)가 태수를 속였다가 후회하고 자살하는가 하면 자기 직속 부하 관리인 문하연(門下掾)은 목을 매는 일도 있었지만 태수인 한연수는 자살하려 했던 관리에게 직접 의원을 보내어 보살피게 감동을 주었다. 이리하여 이 지역에서는 3년 동안 옥사(獄事)는 크게 줄었고, 명령이 내리면 잘 시행되었다. 이러한 업적 때문에 수도(首都)인 장안의 동부지역에 해당하는 좌풍익(左馮翊)을 맡게 되었다. 영전(榮轉)한 것이다.
좌풍익이 되어 자기 소속지역을 순시하다가 민간인 형제가 조상이 물려 준 전지(田地)를 가지고 다투다가 한연수가 오자 처리 방법을 물었다. 이 송사를 받고 나자 한연수는 생각하였다. ‘내가 이곳의 책임자가 되어 교화를 힘썼지만 골육 간에 송사를 하는 지경이 되었으니, 나와 다른 모든 교화를 담당한 관리들에게는 치욕(恥辱)스러운 일이다. 그 최고 책임은 내게 있으니 내가 물러나야겠다.’
그날로 몸이 불편하다고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고 문을 닫고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 밑에 있던 관리들은 잘 못한 것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와서 처벌해 달라고 하였고, 송사를 일으킨 형제는 그 종친들로부터 나무람을 받고서 후회하며 그 표시로 머리를 깎고 웃옷을 벗고 사과하였다. 그 후 그에 속한 24개 현(縣)에서 아무도 송사하는 일이 없었다.
오는 5월이면 지방선거를 하게 되어 있다. 해방 후 벌써 60년 이상 선거를 치러 왔는데, 얼마나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았는가 하는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한연수 같은 인물이 없으라는 법도 없을 것인데, 이를 뽑아 내지 못하는 것은 투표한 사람들이다. 옛날에는 황제가 했지만 지금은 국민이 뽑으니 황제의 권한을 국민이 가진 셈인데, 역사에서 어리석은 황제를 욕하면서도 황제의 권한을 행사하는 국민은 스스로 어리석다는 생각을 못하니 과거의 어리석은 군주와 무엇이 다르랴! 한나라 선제(宣帝)는 한연수를 알아보았지만 지금의 우리는 한연수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하여 알아 볼 수 있을까?
후보자가 나오거든 우선 자기 힘으로 밥벌이를 해 본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별해 볼 필요가 있다. 자기 밥벌이도 하지 못하면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일했다는 사람이 많을 것인데, 그들은 그동안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누구에게 기대든지 속여 먹던지 하였던 국가 사회의 기생충은 아닐지 의심해 보면 사람은 구별 될 수 있을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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