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사랑하는 아들도 못 믿는 황제
한나라 무제 말년에 무고(巫蠱)의 사건으로 태자의 군대와 황제를 대신한 재상의 군대가 수도인 장안에서 전투를 벌인 비극이 있었다.
강력한 통치책을 썼던 무제도 늙고 병이 들어가는데, 그 뒤를 잇도록 한 태자인 유려(劉戾)는 무제와는 달리 비교적 관대하고 후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제의 엄격한 정책을 추진하게 하였던 각박한 관리들은 무제이후에 관대한 성격의 태자가 등극한 후를 걱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태자를 해치고자 하는 관리들이 늘어갔다.
이러한 관료들은 기회가 있을 적마다 태자를 헐뜯었다. 그러나 무제와 태자의 관계는 돈독한 편이었다. 그래서 무제는 밖에 일이 있어서 행차할 때면 항상 태자에게 뒷일을 부탁하였고, 돌아와서 보고를 받고서도 이견을 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태자의 외숙인 위청(衛靑)이 죽어 태자의 배경이 없게 되자 각박한 정책을 추진한 신하들은 태자를 황제에게 더욱 헐뜯었다.
한번은 황제가 몸이 좀 불편하여서 태자를 참소하는 사람 중에 하나인 상융(常融)에게 태자를 불러 오라고 하였다. 상융이 갔다 와서 황제에게 ‘태자가 희색이 만면하였습니다.’라고 보고 하였다. 마치 태자는 자기 아버지인 무제가 아파서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황제는 아무 말 없다가 태자가 도착하자 그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그러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지만 억지로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황제는 자세히 조사해 보니 상융이 태자를 해치려고 무고(誣告)한 것이었다. 황제는 상융을 잡아 죽였다.
또 이 때에 궁중에는 나무로 인형을 만들어서 묻어두고 제사를 지내면서 미워하는 사람이 횡액(橫厄)에 걸리기를 바라는 무고(巫蠱)의 풍조가 있었다. 이러한 일로 궁중은 가끔씩 소란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태자와의 관계가 나쁜 강충(江充)은 무제이후에 태자가 등극하면 죽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무제는 병이 들자 무고(巫蠱)로 저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그러자 강충은 무사(巫師)를 동원하여 궁중에 고(蠱)의 기운이 있다고 보고하게 하였다. 그리고 강충이 태자궁을 다 파헤치고 무고를 찾아냈다고 하였다. 위기에 몰린 태자는 감천궁에 있는 황제에게 직접 가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고하려고 하였다.
태자와 황제가 직접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 강충은 태자를 가로 막고 못 가게 하였다. 할 수 없이 강충을 잡아 죽이고 장안에서 무기고를 열고 군사를 발동하였다. 이러한 일은 결국 태자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문으로 번져 나갔다. 장안에 있던 승상은 사람들 보내어 황제에게 보고하였고 황제의 명령을 받아서 진압군을 편성하였다. 드디어 장안에서 태자군과 승상군이 싸우게 되었다. 결과 태자군은 패배하였다.
이 때에 영호부라는 삼로(三老)가 황제에게 사실의 진상을 간곡하게 말하였다. 황제는 태자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고 강충이 태자를 모해하려 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태자를 용서한다는 말은 아직 하지 않았다.
패배한 태자는 천구리라는 마을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태자를 숨겨 준 집 주인은 가난하여 짚신을 만들어 팔아다가 먹을 것을 구하여 태자에게 주었다. 태자는 미안했다. 그리하여 전에 알던 부자에게 연락을 하여 도움을 청하려고 하다가 숨은 장소가 발각되었다. 관리들은 그 집을 포위하였고, 태자는 자살하였다. 황제는 처음에 태자를 죽인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가 나중에 진상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죽은 아들 태자를 생각하는 사자궁(思子宮)을 짓고, 또 태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오려고 생각한 곳에 ‘귀래망사지대(歸來望思之臺)’를 지었다. 사후 약방문인 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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