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황제의 사치를 막은 동방삭
황제인 무제는 일찍이 공주인 두태주(杜太主)의 집에 술을 마련하여 두고,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다. 이 기회에 두태주는 구슬이나 보석을 판매하는 동언(董偃)이라는 사람을 소개 하였는데, 무제는 그에게 의관을 내려주고 이름을 부르지 않고, ‘주인영감’이라고 부르는 등 총애(寵愛)하여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 그는 늘 황제를 따라서 북궁(北宮)에서 놀거나 말을 타고 평락관(平樂館)에 가서 닭싸움을 구경하고, 축국(蹴鞠)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황상이 두태주를 위하여 선실(宣室)에서 연회를 베풀면서 알자(謁者)로 하여금 동언을 안으로 인도해 오게 하였다. 이 때에 중랑장인 동방삭이 전(殿)아래에 계단에서 창을 잡고 있다고 창을 놓고 앞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동언은 목이 베어져야 할 세 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안으로 오게 하십니까?’ 왜 그러냐는 황제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동언은 신하로써 사사롭게 공주의 시중을 들었으니 그 죄가 첫 번째입니다. 남녀관계를 파괴하고 혼인의 예를 상하게 하였으니 그 죄가 두 번째입니다. 또한 폐하께서 춘추 젊으시므로 바야흐로 육경(六經) 속에서 생각을 하게 해야 하는데, 동언은 경(經)을 받들어 학문을 권고하지 않고 도리어 화려하고 음란한 것만을 내세우며 사치한 것을 힘씁니다. 개나 말을 가지고 한껏 즐기고 귀와 욕심을 극도로 자극하였으니 이는 국가의 큰 적(敵)이며 임금에게는 커다란 해충입니다. 그 죄가 세 번째입니다.’
황상인 무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다가 한참만에야 말했다. ‘내가 무엇인지를 이미 알았으니 연회를 마친 다음에 스스로 고치겠노라.’ 그러자 동방삭은 다시 말하였다. ‘무릇 선실(宣室)이라는 곳은 돌아가신 황제의 정실(正室)입니다. 법도에 맞지 않는 정사는 들여 올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점차 음란함에 물들고 그것이 변하면 찬탈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하다가 수초(竪貂)가 음란해 졌고, 역아(易牙)가 환란을 만들었으며, 경보(慶父)가 죽자 노나라가 온전해 졌습니다.’
수초와 역아는 모두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桓公)의 신하였다. 환공을 돕던 관중(管仲)이 병들자 다음에 재상으로 누구를 쓸 것인가를 관중에게 물었을 때에 관중은 이 두 사람을 멀리하라고 한 것이다. 실은 환공이 아플 때에 수초는 자기 아들을 삶아서 약으로 환공에게 주었고, 역아는 환공이 어려서부터 같이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관중은 ‘사람이란 똑같은데, 자기 아들을 삶아 죽인 사람과 온갖 고난을 참은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임금이 자기 자식보다 더 가깝지 않고, 임금은 자기 자신보다 가깝지 않은 법인데 이것을 무시하고 행동한 것은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에겐 임금이란 밟고 지나갈 징검다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결국 관중이 죽은 다음에 환공은 이 두 사람을 내 쫓았다. 또 경보는 환공의 서자이고 장공의 형이었는데, 환공의 처와 사사로이 통정하였고, 장공이 죽자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거로 도망하였다가 잡혀 와서 자살한 인물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무제는 즉시 조서를 내려서 연회를 중지시키고 북궁에서 연회를 열게 하였다. 그리고 동언은 동사마문으로 데리고 들어오게 하여 전체 계획을 바꾸게 하였다. 이로부터 무제가 동언을 멀리하게 되었고, 한 나라는 다시 기초를 튼튼히 해 나갔다. 물론 무제는 동방삭에게 황금 30근을 상으로 주었다.
황제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에도 황제가 하는 일에 잘 못된 것을 감히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동방삭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후에는 상을 받았지만 잘 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말을 감히 한 것이다.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귀한 것이다.
그러나 무제 같이 바른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권력자가 되기는 더욱 어려울지 모른다. 죽음을 무릅쓰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과 귀에 거슬린 말을 받아들이는 권력자가 어우러지는 시대 그런 시대는 멋진 시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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