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 이야기 49
관직을 팔아먹는 황제
후한(後漢)이 멸망하는 것은 별안간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아주 조금씩 멸망의 길로 나가다가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즈음에 왕조를 마감한 것이다. 후한의 멸망을 시작시킨 사람이 누구일까? 손으로 꼽자면 많지만 그 가운데, 영제(靈帝)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후한의 환제(桓帝)는 두씨 등 외척들의 득세 속에 살다가 영강 원년(서기 167년)에 죽는다. 이때 나이 36세였는데 후사가 없었다. 두씨들은 후사를 세우려고 논의하여 황족인 유(劉)씨 가운데 새로 세울 황제를 해독정후(解瀆亭侯)인 유굉(劉宏)으로 결정하고 모셔 왔다. 유굉은 명목상으로는 후작(侯爵)이다. 그러나 해독정이라는 아주 작은 행정단위인 정(亭)의 후작이어서 군후(郡侯)나 현후(縣侯) 혹은 향후(鄕侯)도 못되는 보잘 것 없는 종실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후에 영제가 된 유굉의 6대조가 장제 유달이고, 그 다섯째 아들인 하간왕 유개의 후손이었는데, 그 후에는 작위는 계속 떨어져서 왕작(王爵)에서 떨어져서 정작(亭爵)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하여 가세는 가난해져 있었는데, 별안간 황제의 오르게 된 것이다. 요새 말로는 벼락출세를 한 셈이다.
황제에 올랐다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황제로 만든 사람들의 틈 속에서 그저 그럭저럭 지낼 뿐이었다. 간혹 올바르게 정치하라고 건의하는 글이 올라가도 전달 받지도 못하고, 황제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온갖 재주로 권력을 휘두르며 그럴 듯하게 말하면서 실제로는 사사롭게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 하다못해 권력자의 노복에게 아부하여 주(州)의 자사가 된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국가의 큰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자잘하게 법률을 만들어 지엽적인 일에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 황제가 된 영제에게 노식(盧植)이 아주 좋은 건의를 하였다. 인재를 잘 선택하고 일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세세한 법률 조목을 줄여서 사람들이 마음껏 일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인지 구별할 수준도 못 되니 거들 떠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겨우 예전에 해독정후였을 때에 가난하였던 것을 생각하여 돈 벌 것을 궁리하였다.
영제 광화 원년(서기 176년)에 처음으로 궁궐의 서쪽에 집을 짓고 관직을 팔아 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한대(漢代)의 관직의 높이는 연봉(年俸)을 기준으로 정하였다. 물론 실제로 이 연봉이 지급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명목상으로는 이 연봉기준이 중요하였다. 그래서 관직명도 이천석에서 사백석에 이르기까지 정해져 있었다. 이천석의 관직은 태수나 자사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직급이었고, 사백석은 낮은 직급의 관직이었다.
영제는 드디어 2천석 벼슬은 실제로 2천석에 팔았고, 사백석의 관직은 400석에 팔았다. 관직을 받을 사람 가운데 칭찬이 자자하여 덕이 있다고 이름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백번을 양보하는 마음으로 그 절반을 받았다. 또 부유한 지방의 지방관을 사기 위하여서는 혹 정해진 값의 배를 내기도 해야 했고, 가난하여 미리 돈을 낼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부임한 다음에 갑절을 내야 했다.
원래 황제란 천하를 다 소유한 것이어서 ‘천하를 천하에 쌓아 두라.’고 하였다. 재물을 어디에 둔들 황제가 쓰고 싶을 때 못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사사로이 재물을 쌓아 둘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이지만, 영제는 황제에 오르기 전에 너무 가난했던 것 때문에 즉위하고도 관직을 팔아서 곡간에 쌓아 놓은 것이다.
요즈음도 높은 자리에 올라서 제대로 국민을 위해 일한다면 노후가 걱정될 까닭이 없을 터이다. 그런데 개중에 막 자라서 아무런 도덕교육· 인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머리 하나 좋다고 하여 출세하는 사람이 있고 마치 영웅처럼 불려진다. 그런데 높은 자리에 갔다가 앞뒤를 가릴 줄 모르고, 끝내는 영어(囹圄)의 신세가 된다. 하다 못하여 대통령을 지낸 사람조차 그런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마치 영제가 황제에 오른 것처럼 집안을 안 보고 막 자란 사람을 뽑아서 그렇다. 양반(兩班)이야 가난해도 곁불을 안 쪼이는 법인데, 양반이 사라진 까닭이다.(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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