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 이야기 48
진정한 승리자의 의연(毅然)함
후한의 3대 황제인 장제(章帝) 유달(劉炟)이 31살의 나이로 죽으니 열 살 된 화제(和帝) 유조(劉肇)가 황제에 즉위하였다. 장제의 황후인 두(竇)황후는 이제 태후가 되었는데, 그녀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귀인(貴人)이 낳은 유조를 자기 아들로 삼아 기른 사람이다. 그러한 점에서 황제가 된 화제에게 두태후는 자기를 황제로 시켜 준 사람이며, 또 나이 열 살에 황제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태후는 임조(臨朝)하여 직접 정치를 챙겼고, 이때부터 두(竇)씨들은 모든 권력을 독차지 하려 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람은 두태후의 오빠인 두헌(竇憲)이었고, 또 그 남동생인 두독(竇篤) · 두경(竇景) · 두괴(竇瓌) 같은 사람이었다.
문제는 아무런 공로가 없이는 높은 관작(官爵)을 주지 않은 한(漢) 왕조의 전통 때문에 두헌에게 높은 관작을 주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북방을 정벌하려고 군사를 일으키고 그 대장에 두헌을 임명한 것이다. 사방에서 전쟁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국가에 이익도 없다는 상소문이 빗발쳤다. 그러나 두헌에게 관작을 주려는 명분을 쌓으려는 두태후와 두헌은 이런 것을 아랑곳 하지 않고 전쟁을 치렀고, 승리한 것을 명분으로 두씨에게 관작이 주어지니, 이제 두씨들은 조정에 가득히 높은 벼슬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 위에 두태후와 가까운 사람들이 드디어 황제인 화제를 독살하려는 음모까지 모의하였다. 황제는 이 사실을 알아 차렸지만 황제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자 두헌에게 붙어 있어서 어찌 해 보기가 어려웠다. 다만 황실의 정원이나 관리하는 책임자인 정중(鄭衆)만이 권력에서 벗어난 자리에 있는 까닭에 황제를 가까이 할 수 있었고, 의심을 받지 않았다. 그리하여 황제는 정중과 두헌의 목을 베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두헌이 남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참고 있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비밀리에 화제는 전한서에 실린 ‘외척전(外戚傳)’을 보고 싶었다. 전한시대에 왕씨 같은 외척들이 어떻게 황제의 권력을 농단하였는지를 알고자 한 것이다. 또 전한 시대에 문제가 권력자 박소를 죽인 일과 무제가 두영을 죽인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게도 하였다. 역사 속에서 현재 닥친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고자 함이었다. 종친인 천승왕 유항이 외척전을 찾아오고, 정중이 전한시대의 고사를 찾아왔다.
방법을 찾은 화제는 즉각 행동하였다. 황제가 북궁으로 행차하며 집금오와 수도방위를 책임진 다섯 교위에게 조서를 내려서 남궁과 북궁에 주둔하며 성문을 닫고 두씨에게 붙어 있던 곽황 · 곽거 · 등첩 · 등뢰를 잡아 가두었다가 죽였다. 알자복야를 두헌에게 파견하여 대장군 인수를 회수하고 그 형제들인 두독 · 두경 · 두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있게 하였다. 두태후의 체면을 보아 당장 죽이지는 않았지만 엄격하고 능력 있는 재상을 선발하여 이들을 감독하고 살피게 하였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두씨들을 다 죽여야 한다거나, 그들이 저지른 죄악을 들쳐 내기에 여념이 없을 터였지만 그 반대인 사람이 있었다. 하남윤인 장포(張酺)였다. 원래 장포는 두씨가 한 창 세력을 부릴 때 두씨에 붙기는커녕 두씨 형제인 두경이 범법하자 법으로 얽어매어 혹독하게 다스렸던 사람이다. 그런데 두씨가 실패하자 오히려 두씨를 살려 두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왕도정치란 세 번 정도는 용서한다.’는 말이 있으니, 차라리 지나치게 후하게 처리하였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지나치게 박하게 처리하지 말라고 간곡하게 권고한 것이다.
바야흐로 새해부터는 새로운 권력이 들어선다. 권력의 핵이 바뀌면 이전의 권력자에게 원수를 갚듯이 모진 압박을 가하였던 것이 해방이후 우리의 근대사였다. 원수를 갚는다는 심정에서 통쾌하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계속 악 순환이 되고 있다. 어른스런 사람이란 남이 잘 못 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지 않는 법이다. 권력을 잡은 사람은 어른스러웠으면 좋겠다. 장포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래야 마음을 열고 통합하고 단결하여 난관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에 계속)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