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 이야기 47
권력자와 충신
어느 시대건 권력을 잡고 안하무인으로 휘두르는 사람은 있다. 후한 장제 때의 이야기 이다. 이때에 두헌(竇憲)은 두(竇)태후의 오라버니로 황제의 외삼촌인데, 시중(侍中)의 자리에 있으면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에 태위인 정홍(鄭弘)이 자주 두헌의 권세가 너무 강성하다고 간절하게 진술하니 두헌은 마음으로 아파하였다.
마침 정홍이 두헌과 한 패거리인 상서 장림(張林)과 낙양현령 양광(楊光)이 재물을 탐하고 잔혹하였다고 상주문을 올렸다. 이 상주문이 올라가자 본래 양광과 아는 사이인 관리가 이 사실을 양광에게 알렸고, 양광은 두헌에게 보고하였다. 이에 두헌은 정홍이 대신(大臣)으로 국가의 기밀을 누설했다고 뒤집어씌우자 정홍은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겠다고 하였지만 황제의 도움으로 풀려나서 사표를 냈으나 황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정홍은 다시 몸이 아프다고 사표를 내면서 사죄하며 편지를 황제에게 올렸다. ‘두헌의 간악함은 천지를 다 관통하고 해내(海內) 사람들이 모두 의혹을 갖고 있으니 똑똑한 사람이건 어리석은 사람이건 그를 몹시 싫어하면서 “두헌이 무슨 술책으로 주상을 미혹하는가? 최근에 일어난 왕씨들의 화란(禍亂)같은 것이 분명히 보일 텐데.”라고 말합니다.’
정홍은 왕망 같은 외척 왕씨들이 왕조를 혼란스럽게 하였던 전례를 들어가면서 두헌도 외척으로 국가를 혼란시킬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음을 황제에게 알린 것이다. 두헌으로써는 뼈아픈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편지를 보고 황제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홍은 계속하여 편지를 써 내려갔다. ‘폐하께서는 천자라는 높은 지위에 계시면서 만세까지 이어갈 왕조를 보호하여야 하는데, 아첨하는 신하의 말을 듣고 존망의 기틀을 헤아리지 않고 계십니다. 신은 비록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으나 죽더라도 충성심을 잊을 수가 없으니 바라건대 폐하께서 사흉(四凶) 같은 죄를 지은 자의 목을 베시고 사람과 귀신이 맺은 분통을 갚으려는 희망을 만족시켜 주십시오.’
정홍은 두헌을 요임금 당시에 간악한 관원의 대표로 알려진 네 사람 환두(驩兜) · 공공(共工) · 사곤(姒鯤) · 삼묘(三苗)와 같다고 결론짓고 나라를 위하여 이 사흉 같은 두헌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황제는 이 편지를 읽고 의원(醫員)을 정홍에게 보내서 정홍의 병을 살피게 하였지만 의원이 도착했을 즈음에 정홍은 이미 죽어 있었다.
정홍은 관직에 있으면서 자신감을 갖고 혁혁한 공적을 이룬 사람이었다. 정홍이 대사농으로 있을 때에 지금의 베트남인 교지(交趾)에서 공물(貢物)을 날라 오면서, 중간에 바다 뱃길을 이용하는 수가 많았는데, 바람을 만나서 침몰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대사농은 재정을 담당한 책임자이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영릉(零陵)에서 계양(桂陽)까지 막혀 있는 산에 길을 내게 하였고, 도로를 잘 만들어서 공물이 제대로 운반되게 하였다.
정홍은 2년 간 대사농의 자리에 있으면서 당시에 산을 뚫어 길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겠는가는 짐작되는 일이지만, 이 어려운 일을 해 냈고, 또 각종 업무를 제대로 추진하여 돈을 절약한 것이 억만(億萬)이었다. 그래서 이 재정을 바탕으로 전쟁의 경보가 있어도 걱정이 없었고, 가뭄이 들어도 걱정이 없었으며, 백성들에게 부과하는 요역(徭役)도 줄여 주었다.
두헌은 권력을 잡고 이렇게 일하는 사람을 모해하여 죽게 한 것이다. 황제가 의원을 보내자 두헌이 정홍을 죽게 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원인(遠因)부터 본다면 두헌이 충신 정홍을 죽인 것은 분명하다.
권력자는 어느 시대나 교언(巧言)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호도(糊塗)하려고 한다. 이제 대선이 다가 오는데 후보들은 연일 ‘말’을 쏟아 낼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주인<옛날에는 황제, 오늘에는 국민>이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어야 충신을 죽이지 않게 될 것이다.(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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