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몸소 대학에 나가는 황제
후한을 세운 광무제가 죽고, 그 아들 명제가 등극하였다. 그 2년 되는 해 3월에 국립대학에 해당한단 할 벽옹(辟雍)에 나아가서 대사례(大射禮)를 거행하였다. 대사례란 군왕이 제사 지내기 전에 활쏘기 시합을 통하여 똑똑한 사람을 선발하여 제사에 참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 해 겨울 10월에 황상이 벽옹에 행차하여 양로예(養老禮)를 치렀는데, 이궁(李躬)을 삼로(三老)로 삼고, 환영(桓榮)을 오경(五更)으로 삼았다. 삼로와 오경이란 국가의 원로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군왕이 부형처럼 예를 갖추는 사람이다.
황제가 탄 승여가 예전(禮殿)에 도착하여 동상(東廂)에 앉아서 사자(使者)를 파견하여 안거(安車)를 가지고 삼로와 오경을 태학의 강당으로 모셨는데, 천자가 문 앞에서 이들을 영접하고 서로 예를 교환하였다. 조계(阼階)에서 이들을 인도하니 삼로는 빈계(賓階)로 올라갔는데, 계단을 다 오르자 천자가 예법대로 읍(揖)하였다. 여기서 조계란 동쪽에 있는 계단으로 주인이 오르는 계단이고, 빈계란 손님이 오르는 계단으로 서쪽에 있으며, 읍이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허리를 굽혀 예를 표시하는 모습이다.
삼로가 계단에 오른 다음에 동쪽을 향해 서니 삼공(三公)이 궤안(几案)을 차려 놓고 9경(卿)은 신발을 바르게 놓았고, 천자는 친히 소매를 걷고 제사지낸 고기를 자르고 간장을 잡아서 이들에게 드리고 나서 잔을 잡아 술로 입가심하기를 권하였는데, 생선뼈인 경(鯁)에 걸리지 말기를 축수하고 밥이 목에 메이지 않기를 뒤에 축수하였다. 오경은 남쪽을 향하여 앉고 삼공이 음식을 올렸는데, 그 예도 또한 같았다. 예를 마치자 환영과 그의 제자를 이끌어 강당에 오르게 하였다. 황상이 스스로 강설하였고, 여러 유자들은 앞에서 경전을 들고 어려운 부분을 물었다. 관대(冠帶)를 갖춘 자들로 교문(橋門)을 둘러쌌는데, 사람들은 억 만 명을 헤아렸다. 이들에게는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하고 2천석의 녹봉으로 종신 봉양하게 하였다.
명제는 태자 시절에 환영에게서 [상서]를 배웠는데,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도 여전히 환영을 스승의 예로 존경하였다. 환영이 병으로 아플 때에 황제는 번번이 사자를 보내어 문안을 드리게 하였는데, 하도 많이 보내어 태관과 태의가 길에서 마주칠 정도였다. 위독해지자 황제는 그 집에 행차하여 기거하는 상황을 물었는데, 그 집에 들어서는 골목에 가서는 수레에서 내려서 경서를 가지고 가서 환영을 위무하며 눈물을 흘렸고, 책상, 휘장, 칼, 의복을 하사하고 오래 머물러 있다가 떠났다. 이로부터 제후와 장군, 대부들이 병문안을 오면서 다시는 수레를 타고 문 앞까지 이르지 아니하였다. 환영이 죽으니 황제는 친히 복장을 상복으로 바꾸어 입고 장례식에 임석하여 영구를 보내고, 수산의 남쪽에 무덤을 쓰게 하였다.
후한의 명제가 자기의 스승을 모신 일단의 정경이다. 후한은 본래 특별히 강력한 왕권을 이룩하지 못한 왕조이다. 그러나 강력한 왕권을 수립하였던 전한과 비교하여도 왕조의 수명을 보면 같이 200년을 갔다. 다만 스승을 제대로 모시는 모습이 사회를 지탱하여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의 값이 땅에 떨어진 지금의 사정으로 보면 꿈같은 이야기이다. 자기 아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어느 부모도 마찬 가지인데, 스승을 무시하는 풍조가 너무 심하다. 그 풍조는 벼락감투를 쓰거나 벼락부자가 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부터 오는 것 같다. 이들은 예의고 염치고 모르고 오직 돈이나 출세만이 전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돈도 없고 꾀죄죄한 자기 아들의 선생을 보고 그만 무심결에 무시하는 말을 한다. 이 이야기를 집에서 들은 그 아들이 그 선생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아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갓 허영이랄 수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