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노예에게 목 잘린 팽총(彭寵)
팽총(彭寵)은 후한 초기에 어양에 근거를 두고 있으면서 후한 광무제 유수에게 항복하지 않은 상태로 연왕(燕王)을 자처하던 군사세력이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뚜렷한 방향도 갖지 못한 채 불안하던 차에 그의 처는 자주 악몽(惡夢)을 꾸었고, 점치는 사람은 안에서 병란(兵亂)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였다.
팽총은 더욱 불안하여 안에는 병란을 일으킬만한 사람은 두지 아니하려고 하여 당시에 한(漢)에 인질로 갖다가 돌아온 자후란경(子后蘭卿)도 믿지 못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밖에 나가 있게 하였다. 그래서 중앙에는 그와 친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고 안에는 다만 노예인 자밀(子密) 등 세 사람만 있게 하였다.
그런데 자밀 등 세 사람이 팽총이 누워있는 틈을 이용하여 침상에 묶어 놓고, 밖에 있는 관리들에게는 거짓으로 ‘대왕께서 재계(齋戒)하고 계시니 관리들은 모두 쉬도록 하라.’고 하였다. 또 팽총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나머지 노비들을 다 잡아서 묶어 한 곳에 가두어 놓고, 또 팽총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팽총의 처도 불러서 머리를 잡고 뺨까지 때렸다. 그러자 팽총이 ‘빨리 제장(諸將)들에게 행장을 꾸리게 하시오.’라고 하였다. 노예를 제장으로 올려 부르며 처에게 보물을 다 주게 한 것이다.
자밀 등 두 명이 팽총의 처를 데리고 보물을 꾸리는 사이에 제일 나이 어린 노예가 팽총을 지키고 있었다. 팽총이 이 어린 노예에게 구슬렸다. ‘너는 어린 아이지만 내가 평소에 아꼈다. 지금 자밀이 너를 협박하여 이리하는 것을 잘 아는데, 지금 나의 포박을 풀어 준다면 내 딸 팽주(彭珠)를 너에게 아내로 삼게 하고 보물을 전부 줄 것이다.’ 그러나 어린 노예는 자밀이 밖에서 들을까 두려워서 풀어 주지 못하였다.
노예들은 보물을 다 꾸리고 저녁에 말 여섯 필을 준비하게 하고 다시 자루 두 개를 만들게 하고서는 팽총의 결박을 풀어 주면서 밖에 있는 성문을 지키는 성문장군에게 편지를 쓰게 하였다. ‘지금 자밀 등을 파견하여 자후란경이 있는 곳으로 가게 하니 이들을 잡아 두지 말라.’ 편지를 다 쓰자 팽총과 그의 처를 목 베어 두 개의 비단 자루에 넣어 가지고 성문을 유유히 빠져 나갔다.
다음날 아침에 팽총이 있는 건물의 합문(閤門)이 열리지 않자 관속들이 담장을 넘어서 들어가서야 팽총의 시체를 보고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결국 다시 팽총의 아들인 팽오(彭午)를 세워 연왕이라 하였지만 국사(國師)인 한리(韓利)가 팽오의 목을 베어 가지고 채준(祭遵)에게 가서 항복하였고, 그의 종족은 다 죽었다. 황제인 유수는 골칫거리 하나를 해결한 자밀에게 ‘불의후(不義侯)’라는 후작(侯爵)을 주었다.
유수가 후한을 세우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는 하였어도 아직은 전국을 완전히 통일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팽총은 유수의 명령을 어기고 배반하여서 골칫거리가 되었던 참에 그를 죽인 자밀에게 고마웠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노예로써 그 왕을 죽였다는 것은 팽총이 유수를 배반한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작위를 주면서 ‘불의후’라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나라 때의 정치가이며 역사가인 권덕여(權德輿)는 팽총의 잘 못과 자밀의 잘 못은 똑같은데 한 사람에게만 상을 주었던 일을 비판하였다. 이는 ‘제왕의 법도를 밝히지 못한’ 처사라고 정의하였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기보다는 내게 이롭게 하면 용납하고, 내게 이롭지 못하면 옳은 일을 했다고 하여도 비난하는 것이 요즈음 세태이다. 겉으로 정의를 내세우지만 파당의 이익 나아가서는 결국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교묘한 논리를 펼치고 있는 한 역사가의 비판에서 도망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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