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실제를 모르고 개혁만 앞세운 실패
왕망이 황제가 되어 고치고 싶은 것이 많았다. 화폐제도를 고쳐서 종전에 쓰던 오수전을 철폐하고, 소전(小錢)과 대전(大錢) 두 가지만 쓰고, 사전(私錢)의 주조를 막으려고 민간으로는 석탄이나 구리를 보유할 수 없도록 하였다. 또 빈부의 격차를 줄인다고 농지와 집의 매매를 금지시키고, 부자들에게 900무(畝)의 토지 이외의 것은 이웃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하였다.
참으로 대단한 개혁조치였다. 돈을 사사로이 주조하는 것은 국가 경제를 위하여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다 아는 사실이고, 빈부의 격차가 너무 나는 것은 사회의 안녕에서나 인류의 도리에서도 마땅하지 않은 것은 예나 오늘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왕망은 황제가 되자 이를 개혁하고자 하였으니 훌륭한 제왕이라고 해야 할만하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그리는 이상(理想)이라는 것이 구체적인 바탕을 모르고 내 뱉으면 미친놈이 되기에 십상이다. 그 이상은 목표이지 단계를 뛰어 넘어서 단번에 이루어질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왕망은 머릿속에서만 그리는 이상을 내 뱉은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아무리 황제의 말이라도 실현될 수 없는 것은 뻔 한 일이다.
화폐를 개혁하였으나 전폐(錢弊)는 유통되지 않았다. 현실을 모르고 개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조치를 내렸다. ‘화폐 가치가 모두 높은 것이면 조금씩 쓸 때는 지급할 수 없고, 모두 가치가 낮은 것으로 만들면 이를 보내거나 싣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따라서 가치의 경중과 크기의 대소에서 각각 차이 있게 만들라.’ 그래서 다시 금폐(金幣), 은폐(銀幣), 구폐(龜幣), 패폐(貝幣), 전폐(錢弊), 포폐(布幣) 등 28종류의 종류의 화폐를 만들었다. 이러니 이번에는 너무 혼란스러워서 쓸 수가 없게 되었고, 다시 1전짜리 소전(小錢)과 50전짜리 대전(大錢)만 쓰도록 하였다.
각가지 법률로 이를 시행하도록 하였다. 그래도 몰래 화폐를 주조하는 것을 금할 수 없자, 한 집에서 동전을 주조하면 그 이웃 다섯 집을 모두 노비가 되게 하였다. 여행할 때에는 통행증에 가지고 다니는 동전을 기록하도록 하고 검문하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왕망의 말을 믿지 못하여, 쓰지 못하게 한 한나라 때의 오수전(五銖錢)을 사용하였다.
그러자 농지와 집을 매매하거나 노비를 매매하거나 동전을 몰래 주조하면 안 된다는 금령을 위반하여 벌을 받는 사람은 제후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농업과 상업은 황폐화되어 경제는 파탄되어 백성들이 저잣거리에서 눈물을 흘리기에 이르렀다.
왕망의 이상(理想)은 실현되기 보다는 오히려 그냥 내버려 둔 것 보다 더 사람들을 못 살게 굴었다. 그것 때문에 결국 자신도 몰락하였지만 나라도 피폐할 대로 피폐해 지고 말았다. 국가를 이끌어 가는 사람의 생각 하나가 현실을 모르고 정치를 하는 바람에 애꿎은 백성들이 피 눈물을 흘린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10년 전부터 개혁이란 말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각 가지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부동산을 사고팔아서 폭리를 취하는 사람이 뵈기 싫어서 세금 폭탄이란 말을 내 놓았다. 서울 놈들, 강남 놈들 잘 사는 것이 보기 싫다고 여기저기 새로운 신도시를 만든다고 하여 전국을 파헤쳐서 개발지역으로 만들어 보상금을 내려 주니 이 자금이 다시 투기자금으로 바뀌기가 일수였다.
빈부격차를 줄이겠다던 목표는 오히려 빈부격차를 더 넓혀 놓았고, 일자리는 줄어들어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되었다. 교육비가 무서워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으니 사람 없는 땅 덩어리만 남게 될까 걱정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경험 없는 애송이보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지혜 있는 어른을 존경했던 것이 아닐까?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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