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교활한 왕망에 속는 태후
기원전 1년, 전한의 애제(哀帝)가 장안의 미앙궁에서 죽었다. 성제의 뒤를 이은 지 7년 만인 27세에 죽은 것이다. 정치의 일선에서 쫓겨나다 시피 했던 태황태후 왕씨는 재빨리 행동하였다. 황제가 없는 마당에 황실의 최고 어른은 태황태후인 왕씨였으므로 바로 미앙궁에 들어와서 황제의 인새와 인수를 걷어 들이고, 장례절차와 후사 없이 죽은 애제의 뒤를 이을 황제도 뽑는 헤게모니를 잡은 것이다.
태황태후 왕씨는 죽은 성제가 외척인 왕씨를 배척한 것을 감안하여 재빨리 행동한 것이다. 우선 장례절차를 진행해야 하였는데, 당시 대사마인 동현은 이 절차를 알지 못하였다. 이에 지금은 쫓겨나 있지만 과거에 황제의 장례절차를 경험하였던 왕망(王莽)을 부르자고 제의하였고, 별다른 문제없이 친정조카인 왕망을 불러 들였다.
왕망이 일단 조정에 들어오자 태황태후는 사람을 시켜서 성제 때 권력을 쥐었던 동현을 탄핵하게 하고 이를 이유로 파직시키고 자살하게 하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왕망을 대사마로 천거하도록 조치하였다. 한동안 설움을 받았던 친정을 부흥시키고자한 조치였다. 대사마가 결정되자 후사로 중산왕이었던 유기자(劉箕子)를 데려다가 황제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왕망은 멀리 익주에 은밀히 연락하여 하얀 들 닭 한 마리와 검은 들 닭 두 마리를 진상하게 하자 전후 사정은 모르는 태후는 이 닭은 종묘에 지사 지내는데 쓰라고 하였다. 옛날에 주공이 하얀 들 닭을 얻은 다음에 상서로운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원용하여 이제 한나라에 상서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면서 그 공로는 왕망에게 있다고 칭송하게 하였다.
태후는 안한공이라는 높은 작위를 하사하였지만 왕망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네 번이나 사양하자 마침내 왕망의 뜻을 받아 들여 작위를 안 주기로 하니 왕망이 그제야 조정에 나와서 업무를 수행하였다. 다시 여러 신하들이 왕망에게 작위를 주라고 간청하여 다시 작위를 내렸지만 왕망은 오히려 만백성이 다 잘 살게 될 때까지 작위를 안 받겠다고 버텼다. 가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왕망은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벌 받은 사람을 사면해 주고, 퇴직한 관리에게 원래 녹봉의 3분의 1을 종신토록 지급하게 하였다. 이러한 은전은 평민들과 과부, 홀아비에게까지 미치게 조치하니 왕망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결국 대신들은 권력을 쥔 태황태후에게 연세도 많으니 권력을 친정조카인 왕망에게 맡기라고 하였고, 왕망의 권한은 군주와 맞먹을 정도가 되었다. 권력을 독점한 왕망은 그래도 태후를 속이는 일을 하였다. 가뭄이 들자 소식(素食)을 하면서 태후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자기 재산을 내 놓아 빈민들을 구제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태후가 좋아 할 일을 일부러 만들어 해 나가니 그만큼 권력도 커졌고 신임도 두터워졌다. 결국 태후도 왕망의 권력을 제한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 왕망을 반대할 사람은 조정에서 다 제거하고 그 다음 순서는 황제의 자리를 빼앗는 일이었다. 왕망이 황제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그제야 태후는 왕망이 자기를 속이려고 하였던 행동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늦었다.
자기 친정을 일으키려고 고아인 친정조카인 왕망을 등용하였다가 한나라의 운명이 마감을 하게 한 것이다. 태후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황제와 옥새만 붙잡고 주려고 하지 않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결국 전한은 왕망에 의해서 망하고 왕망의 신(新)이라는 왕조가 탄생하였다.
왕조를 세운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 나름대로 난리를 평정한 공로를 가지고 황제에 오른다. 그러나 왕망은 순전히 속이는 방법과 말재주 하나만으로 왕조를 세운 셈이고 어리석은 황태후는 여기에 속았다. 이 시대에도 사회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부흥시키며, 국방을 튼튼히 하는 데 아무런 업적도 없이 말재주만 가지고 대권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유권자들은 황태후 같지는 말아야 할터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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