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도와주어도 소용없는 성제
전한시대에 성제(成帝)가 등장하면서 외척인 왕씨(王氏)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이후로 왕씨들이 득세한 결과 20여년 뒤에는 왕망(王莽)이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세우게 된다. 성제가 등장하였는데 외척인 왕씨 집안에서는 5형제가 모두 열후가 되었고, 그 집안사람들은 다투어 사치하였다. 사방에서는 그 집안으로 뇌물이 몰렸고, 빈객(賓客)들은 그 문하에 가득하였다.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은 다투어 왕씨들이 훌륭하다고 칭송하였지만 유향(劉向)만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천재지변이 나타나고, 황제의 외가인 왕씨들이 날로 번성하니 결국 유(劉)씨가 세운 한(漢)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정권을 쥐고 있는 왕씨를 들어 내 놓고 비판할 수 없는 분위기 때문에 유향은 간언(諫言)하는 글을 써서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도록 봉함하여 황제인 성제에게 보냈다.
‘신이 듣기로는 임금 가운데 안정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었으나 항상 위험한 일이 생겼으며, 나라가 오래 유지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었으나 멸망해 버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예나 오늘이나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마음만 가지고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잘 되는 방법을 찾아내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유향은 계속 성제에게 충고하였다. ‘신하를 통제하는 방법을 잊으면 나라는 위태로워지는데, 신하인 대장군이 전권을 휘두르며, 자기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내 쫓습니다. 그들을 칭찬하는 사람은 등용되어 진급하고, 그들에게 욕하거나 원한을 산 사람들은 주살되거나 다칩니다. 그렇다고 외가인 왕씨를 죽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왕씨가 영원히 작위와 녹봉을 유지하게 하시고, 우리 유씨가 사직(社稷)을 잃지 않게 하십시오.’
간절한 충고였고, 방법의 제시였다. 이 글을 읽은 성제는 유향을 불러서 비통해 하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좀 쉬고 있으시오. 내가 장차 이 문제를 생각해 보겠소.’ 그러나 성제는 끝내 유향의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20여년 뒤에는 유씨의 한 왕조는 왕씨의 신(新)왕조로 바뀌고 다시 15년 뒤에는 왕망도 쫓겨나 죽게 되는 역사적 비극이 일어났다. 성제가 유향의 충고를 제대로 실천만 했더라면 한왕조는 그리 쉽게 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왕망도 처참하게 죽는 일은 안 생겼을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건 사태를 올바르게 보는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권력을 쥔 사람이 올바르게 보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거나 과감하게 그 건의를 실천하지 못하는데 있다.
우리시대는 참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자기는 일 안하면서 열심히 일해서 돈 번 사람을 도둑같이 보려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기현상이다. 공장에 가서 일할 생각은 아니하고 길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는 것을 직업인 양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농업이나 공업 같은 제조업은 중국에게 추격을 당하고, 더 부가가치가 있는 문화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말뿐이다. 실제 써 먹을 수 있는 지식을 공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1년에 한 번도 써 먹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영어를 미친 듯 가르치는 풍토도 한심하다. 이것이 현대적 사치가 아니고 무엇이랴!
한나라를 망친 성제를 비웃을 수 없고, 사치하다 멸문의 화를 당한 외척 왕씨를 나무랄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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