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혼란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전한시대의 원제(元帝) 때에 경방(京房)이란 사람은 ≪주역≫을 공부하여 재이(災異)가 일어날 일을 잘 맞추어 원제가 자주 불러 주었다. 이를 이용하여 당시에 정치를 그르치는 중서령인 석현(石顯)을 제거하려고 원제와 인재등용에 관하여 대화하였다. 이를 요약해 보자.
경방의 말 ; 주(周)나라를 몰락하게 한 유왕(幽王)이나 여왕(厲王)시대는 나라가 위태로워 졌는데, 간사한 신하를 군주가 알고 채용했을까요?
원제 ;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채용했겠지.
경방 ; 그런데 지금 와서 그들을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원제 ; 그들이 다스리던 시대가 혼란하였고 임금이 위태로워졌었기 때문이요.
경방 ; 폐하께서 즉위한 후로 해와 달이 빛을 잃고, 산이 무너지며 지진이 일어나고, 운석이 떨어졌습니다. 여름에 서리가 내리고 겨울에 천둥이 치며, 봄에 꽃이 마르고 가을에 잎이 무성해지며 수재와 한재, 황충의 피해가 일어나서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지금은 어떤 시대입니까?
원제 ; 혼란하오.
경방 ; 지금 정치를 맡기고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원제 ; 그래도 전보다는 좋소.
경방 ; 전시대의 군주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겠지요.
여기까지 이야기 하다가 원제는 드디어 물었다. ; 오늘날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누구요?
경방 ; 밝으신 군주께서는 이미 아시고 계십니다.
원제 ; 내가 알고서야 등용했을 리가 있겠소?
경방이 말했다. ; 황상께서 가장 신임하셔서 휘장 속에서 천하의 선비를 올리거나 내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여기에 이르자 경방과 원제의 입에서는 석현의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왔지만 시대의 혼란책임이 석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원제는 석현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사마광은 원제와 경방의 관계를 ≪시경(詩經)≫의 구절을 통하여 설명하였다. ‘얼굴을 맞대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귀를 잡고 말하였고, 손으로 잡아끌었을 뿐만 아니라 보여주기까지 하며 말하였다. 거듭거듭 하여도 이야기를 겉으로 듣는 도다.’
경방은 후에 석현에게 몰리어 죽었지만 원제가 죽은 다음에 한나라의 운명은 왕씨에게로 넘어가고 결국은 왕망에 의하여 신(新)왕조로 바뀌었다.
경방은 자기가 살던 시대가 혼란한지 아닌지를 자연재해를 가지고 설명하였지만, 요즈음이 혼란한 시대인지 아닌지를 자연현상으로 판단하는 데는 설득력이 약하다. 다만 백성들이 살고 있는 모습으로 판단할 수는 있다.
도처에서 청년들은 취업을 못하였다고 한숨이고, 직장을 가진 사람도 40이 넘으면 명퇴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 위에 죄를 짓고 후회는커녕 사회를 탓하는 사람이 늘어 간다. 이 시대는 혼란의 시대인가? 아닌가?
지금이 혼란의 시대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막연히 모든 국민에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어려운 여건의 시대 탓을 해서도 안 된다. 어느 시대건 문제는 늘 있었지만 좋은 시대란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였고, 혼란의 시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책임 질 사람은 분명히 있다. 대응의 책임을 진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다. 지금 시대에는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여러 종류이다. 전통적인 권력자 이외에도 많은 사람을 동원하는 세력도 권력자에 버금가는 사람들이다. 권력만큼 책임도 질 줄 알면 좋으련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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