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나라를 기울게 한 우유부단한 원제(元帝)
한(漢)나라의 선제가 죽고 그의 아들인 원제(元帝)가 등극하였다. 등극하고 나서 바로 좋은 정치를 해 보고 싶어서 평소에 경학(經學)에도 밝고 행실도 깨끗하다는 사람인 공우(貢禹)를 불렀다. 그가 오자 원제는 마음을 비우고 좋은 정치를 할 방법을 물었다.
이렇게 시작은 참으로 좋았다. 정치를 시작할 때야 예나 지금이나 중감쯤만 가는 사람이라면 좋은 정치를 하여 청사(靑史)에 이름을 길이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니 말이다. 공우는 원제에게 건의하였다.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라는 내용이었다. 우선 옷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궁정에서 사용하는 말을 줄이며 궁녀들도 내 보내라고 하였다. 황제의 수레에 치장한 것들도 줄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하늘이 성인(聖人)을 내신 것은 만민(萬民)을 위한 것이지 다만 스스로 즐기게 하려고 내신 것만은 아닙니다.’라고 하면서 말을 맺었다. 여기서 성인이란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황제만 혼자서 즐기지 말라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말한 것이다. 원제는 이 말을 듣고 참 좋은 생각이라고 하여 궁중(宮中)에서 필요 없는 옷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후궁도 줄이도록 조치하였다.
또 원제를 어렸을 적부터 가르쳤던 스승인 전장군(前將軍) 소망지(蕭望之)와 광록대부인 주감(周堪)이 원제를 보좌하면서 좋은 인재를 추천하였다. 그리고 공정한 정치를 하는데 힘을 쓰도록 하자, 원제도 그의 말을 들으니, 한 왕조는 모든 정치가 잘 되어 갈 듯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더 혈안이 된 외척인 사고(史高)와 허장(許章) 그리고 황상의 총애를 받는 환관인 석현(石顯)에게 있어서 소망지와 주감은 눈에 가시였다.
결국은 소망지가 휴가인 날을 기다렸다가 그를 모함하는 상소문을 올려서 소망지가 여러 가지 죄를 지었다고 하였다. 황제는 새로 황제에 등극한지라, 우선 정위(廷尉)에게 내려 보내어 조사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즉각 소망지를 구속하였다. 원제는 ‘정위에게 내려 보내라.’는 말이 통상적으로 구금하라는 말인 것을 모르고, 단순히 조사만 하게 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자기의 지시가 잘 못된 것을 알고 원제는 그를 석방하라고 했지만 사고는 원제를 위하는 척하면서 구속했다가 바로 석방시키는 것은 경솔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궤변(詭辯)을 늘어놓고 소망지와 주감을 면직시키도록 하였다.
그 후에 원제는 소망지와 주감을 다시 등용하려고 하였지만 번번이 석현 같은 사람들의 참소(讒訴)에 시달려야 했고, 급기야는 소망지는 자살하게 되었다.
사마광을 이 사건을 보면서 원제가 임금노릇을 하면서 쉽게 속고 잘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처음에 참소꾼들의 궤변에 원제가 제대로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하여도 후에 모든 정황과 증거가 나타나서 이들이 황제를 속인 것이 분명히 들어났는데도 결단을 못 내리고 넘어 가 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유부단(優柔不斷)한 원제의 실체를 안 참소꾼들은 계속하여 참소하면서, 그것이 들통이 나더라도 사과만 하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후에도 원제는 시비를 가리지도 못하는 황제가 되었고, 우왕좌왕하면서 한(漢)왕조가 외척인 왕씨에게 넘어 가는 것도 모르고 지냈으며, 급기야 그가 죽은 지 30여년 뒤에는 왕망(王莽)이 등장하여 한나라를 빼앗아 갔는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원제에게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시대건 소망지나 주감 같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알아보는 최고 권력자가 있어야 그 충성심과 능력을 발휘하게 되어 있다. 한 집안의 성공과 몰락도 마찬가지이고 한 국가의 흥성과 몰락도 마찬가지일터이니, 어른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고도 어려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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