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도백(屠伯)인 엄연년(嚴延年)과 그 어머니
전한 선제(宣帝)시대의 이야기이다. 지금의 낙양인 하남의 태수로 엄연년이 부임하였는데, 정사(政事)를 처리하면서 음험하고 지독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죽어야 할 사람은 하루아침에 풀어주고, 살아나야할 사람은 궤변으로 죽임을 내린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밑에 있는 관리나 백성들은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몰라서 전전긍긍하였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각 현에 있는 죄수를 태수가 있는 군(郡)으로 데려다가 죄를 심리하는데, 사형을 집행하는 일이 빈번하여 목을 잘라서 나온 피가 몇 리를 이어 나오니 사람들은 사람 백정인 태수란 뜻으로 ‘도백(屠伯)’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하남지역에서 황충이 나타나서 피해를 많이 입히었다. 태수 밑에 있는 관리인 부승(府丞)인 의(義)라는 사람이 재해지역을 돌아보고 와서 태수인 엄연년을 만났다. 엄연년은 평소에 자기가 얕보던 황패(黃覇)가 자기 이웃하는 영천군(潁川郡)의 태수로 와서 정치를 잘하여 봉황이 모여들었다 하여 황제로부터 칭찬하는 조서까지 받은 일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생각하며 의에게 물었다. ‘이 황충은 봉황(鳳凰)의 먹거리인가?’ 의는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엄연년이 자기를 중상 모략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두려워만 하였다.
사실 엄연년은 자기 부하인 의에게는 잘 대하여 주어서 모든 것을 후하게 대하였고, 물건으로 도와 준 일이 있지만 의의 입장에서는 엄연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결국 휴가를 받아 도읍인 장안에 가서 엄연년이 지은 죄를 열 가지를 열거하여 가지고 황제에게 편지를 올리고 자기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자살하였다.
이러한 일이 있기 전에 엄연년의 어머니가 동해(東海)에 살다가 아들이 태수가 되어 매년 말에 드리는 큰 제사에 참여하려고 하남에 왔다가 자기 아들이 죄수들을 처단하는 것을 보고는 아들이 있는 군부(郡府)로 들어가지 않고 역(驛)에 있는 숙소에 머물러 있자, 엄연년이 그 어머니를 찾아갔으나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엄연년이 백배 사죄하고 문밖에서 오래 머리를 조아리자 겨우 입을 열었다. ‘네가 다행이도 군의 태수가 되어 1천리를 다스리고 있지만 어질고 아껴주는 태도로 백성을 교화하고 안전하게 보살핀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형벌로 많은 사람을 죽여서 위엄을 세우려 하니 그것이 어찌 백성의 부모가 된 뜻이겠는가?’ 엄연년은 백배 사죄하였고 그 후에야 겨우 부사(府舍)로 모시고 갔지만 그 어머니는 제사가 끝나자 곧바로 동해로 떠나면서 말하였다.
‘천도(天道)는 신령하고 밝아서 사람이 멋대로 죽일 수는 없다. 나는 늙어가지고 장정이 된 아들이 형벌을 받아 죽는 것을 볼 생각이 없구나. 너를 떠나서 동해로 돌아가서 선조의 묘소나 청소하며 살겠다.’ 동해에 가서는 다시 이러한 이야기를 친척들에게 이야기 하였다.
이러한 일이 있은 지 1년 만에 자기 부하인 의(義)로부터 고발을 받아서 조정에서 그의 죄를 조사하게 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어사승(御史丞)에게 내려 보내어 조사하게 하였더니, 정말로 황제를 비방한 일들이 발견되었고, 대역부도하다는 판결을 받아 처형되었고, 그의 목은 저자에 걸렸다. 이 소식을 들은 동해에 사는 친척들은 엄연년의 어머니가 현명하다고 말하였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좋은 정부가 다스리면 평화롭게 살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고생하게 되어 있다. 필리핀에 막사이사이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에 우리는 필리핀을 아주 잘 사는 나라로 선망(羨望)한 일이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백성들은 좋은 정부인지 나쁜 정부인지는 어려운 문자로 수식된 주의나 사상을 가지고 판단할 필요가 없다. 다만 살기가 좋아졌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실제 생활 속에서 엄연년의 어머니처럼 직감으로 아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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