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헌제 시절은 실제로 조조가 전권을 좌지우지하였고, 유비와 손권을 비롯한 많은 영웅호걸들이 자기의 영역을 확보하고 넓히려고 노력하여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역사가 진행될지 한 치 앞은 내다 볼 수 없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때에 산동지방에 중장통(仲長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떠돌아다니면서 공부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다니다가 드디어 산서지역에 있는 병주(幷州)까지 갔는데, 병주자사인 고간(高幹)이 중장통을 잘 대우하면서 세상(世上)이 어떻게 돌아 갈 것인가를 물었다. 아마도 고간도 난세(亂世)에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고, 중장통에게 그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알아서 자기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마련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중장통은 고간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웅대(雄大)한 뜻을 가졌으나, 큰 재능이 없고, 선비를 좋아하지만 사람을 가릴 줄 모르오. 이것을 그대에게 깊이 훈계하는 바이요.’ 그렇다. 뜻은 크게 가질 수 있으나 그 뜻을 뒷받침하는 재주를 가져야 되고, 또 혼자 이룰 수 없는 꿈이니, 사람을 가려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이 이야기대로 중장통이 고간은 조조의 공격을 받았다. 자기 힘으로 조조를 막을 수 없자, 흉노에게 원조를 요청하였으나 흉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붙잡혀 참수되었다.
후에 중장통은 순욱의 천거를 받아서 상서랑(尙書郞)이 되었고, 치란(治亂)에 관한 의견은 저술하여 “창언(昌言)”이라고 하였다. 그가 역사를 보는 시각을 살펴보자. ‘호걸이라고 하여도 처음부터 천명을 받은 것은 아니고, 전쟁을 하거나 지혜(智慧)를 가지고 다투게 되는데, 일어날 때는 전쟁으로 시작하지만 끝까지 가려면 지혜로 다른 사람이 대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창업주군을 말하는 것이다. 이 창업주군을 이은 후손은 우매하여도 어지간만 하면 잃어버리지 않는다. 자기가 우둔한데 똑똑한 사람들과 용감한 사람들을 부릴 수 있게 되니, 이 우매한 후계자는 천하에 감히 자기와 다툴 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이르면 이 후계자는 간악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자기를 즐겁게 하는 자만을 좋아하고, 그에게 아낌없이 내려 준다. 그 옆에 붙어 있는 사람들이란 자기 한 몸 밖에 모르는 인간들로 꽉 채우게 된다. 그러면 천하의 백성들은 고통에 빠진다. 결국 원망하는 소리가 독기(毒氣)가 되고, 백성들은 삶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고, 외적은 침입한다. 이렇게 되면 운수(運數)는 이동하고 대세는 사라지게 되지만 그래도 왜 그런지를 모른다.
사회가 혼란한 것을 표현하는 단어로 와해(瓦解)와 토붕(土崩)이 있다. 와해는 기왓장이 개지는 것이고, 토붕은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말하는데, 사회가 무너지는 단계는 와해의 단계를 거쳐서 토붕의 단계로 들어간다. 토붕의 단계에 들어가면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이 된다. 와해와 토붕은 나타날만하여 나타난 것이다. 어디 왕조의 운명만이 이렇듯 돌고 도는 것이겠는가! 한 가정을 놓고 보아도 그렇고, 개인을 놓고 보아도 그렇다.
그러니까 운수는 스스로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 흐름을 따라가면 운수는 대통(大通)하지만, 자연의 흐름을 거역(拒逆)하면 역풍을 만난다. 이러한 말이야 늘 들어왔지만, 욕심에 눈이 어둡거나, 분수를 모르면 자기의 행동이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인지, 거역하는지를 파악하지 못한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중장통이 고간에게 한 말처럼 재주도 없는데, 엉뚱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사람을 가려 볼 줄 아는지?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 듣기 좋게만 말하는 아첨꾼은 아닌지? 주역(周易)에서는 ‘서리가 내리면 다음에는 물이 단단히 어는 겨울이 올 것을 안다’고 하였다. 우리는 지금 서리가 내리는데도 봄날이 올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다음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