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 이야기 57회
공직으로 원한을 갚은 사람
사람이 살다 보면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서운한 일도 있고, 억울하여 감정이 상하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이 경우에 특히 공직자 가운데는 자기가 가진 공적 업무를 이용하여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있는데, 이러한 일이 많이 일어나면 그 사회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말한다. 후한의 영제시대는 환관이 권력을 휘둘러 기울어져 가는 시기였다. 이때의 몇몇 사건을 보자.
사예교위에 있던 왕우(王寓)는 환관에 의탁하여 벼슬을 하는 사람인데, 한번은 태상(太常)인 장환에게 자기를 좀 천거해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장황은 이를 거절하였다. 왕우는 화가 나서 장환을 모함하여 당인(黨人)이라고 무고하여 금고(禁錮)를 당하게 한다. 환관의 정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당파를 만들었다고 하여 죄를 주고 있던 시절의 죄목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장환은 예전에 단경(段熲)과 같이 강족(羌族)을 토벌하러 나갔다가 서로 의견이 달리하여 다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단경이 사예교위가 되어 범죄자를 잡는 큰 권한을 갖게 되자 장환을 전방 지역인 돈환으로 보내어 그를 해치고자 하였다. 그러자 장환은 단경에게 서신을 보내어 간절하게 살려달라고 하자 죽음만은 면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공적인 권력으로 처리하려고 한 예이다.
또 다른 사람인 이고(李暠)가 사예교위가 되어 범법자를 잡는 자리에 오르게 되자, 오래도록 자기와 원한 관계에 있던 소겸(蘇謙)을 죽였다. 그의 아들 소불위(蘇不韋)는 이를 정식으로 항의해도 소용이 없을 것을 알고, 자기 아버지 장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의 이름을 바꾸고, 자객과 결탁하여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고는 사예교위에서 대사농으로 승진하였는데, 소불위는 이고의 집 곳간에 숨어 들어가서 땅굴을 파고서 이고의 침실 근처까지 갔고, 마침내 그의 첩과 어린 아이들을 죽였다. 이고는 무서워서 하루 밤에도 아홉 번이나 잠자는 장소를 옮기고 또 밑에 나무판자를 깔고 잤다. 밑에서 파고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불위는 다시 이고 아버지의 무덤을 파서 그 목을 잘라 저자에 내 걸었다. 이고는 범인을 잡아 달라고 하였지만 끝내 잡지 못하였고, 그 사이에 분노는 더 커져서 이고는 마침내 피를 토하고 죽었다. 얼마 후에 사면령이 내리니 소불위의 죄는 사면되었고 그 제서야 소불위는 자기 아버지를 장사 지냈다.
공교롭게도 장환과 소씨는 화목한 사이였고, 단경과 이고는 절친한 사이였다. 사예교위인 단경은 소불위를 불러서 자기의 심부름을 하는 종사(從事)로 삼으려고 하였는데, 전후 사정을 감안하여 소불위는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나아가지 않았다. 화가 난 단경은 자기 밑에서 심부름하는 종사 장현(張賢)을 시켜서 소불위의 집에 가서 그를 죽이게 하였다. 그러면서 장현이 심부름을 제대로 하지 않을지 염려한 나머지 독약을 싸서 장현의 아버지에게 주면서 ‘만약에 당신의 아들 장현이 소불위를 죽이지 못하면 당신은 이 약을 먹고 죽으시오.’하였다. 장현은 하는 수 없이 소불위를 체포하고 그 집안사람 60여 명을 잡아서 모두 죽였다.
이 사건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공사(公私)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이 정도에 이르면 이미 국가와 사회의 기강은 무너진 것이고, 앞에 말한 대로 왕조는 망하게 되어 있다.
요즈음에는 이렇게 죽이기까지 하는 일이야 없겠지만 공직자 가운데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처에 있다. 고위공직자가 자기가 믿는 신앙이 좋다고 하여 모든 공직자들에게 자기가 신앙하는 종교를 믿도록 하자고 공공연히 말한다. 신앙은 개인적인 것인데 공직을 이용하여 이를 입에 올리니 어이가 없는 일이다. 더욱 자기가 신앙하는 종교의 사람을 되도록이면 등용하려는 한다고 하니, 이 사회, 국가가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지금 세상이 후한의 영제 때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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