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인사관리에서 칼럼을 연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첫번째 원고를 넘겼습니다. 이 원고는 9월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의 용인(用人)
권 중 달(중앙대 명예교수, 삼화고전연구소 소장)
진(秦)이 멸망한 다음에 천하를 놓고 다툰 두 사람, 유방과 항우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듣는다. 특히 항우에 대한 멋진 이야기는 많이 전한다. 항우에게 글공부를 시켰더니, 이름자만 쓸 수 있으면 됐다고 하면서 그만 두었고, 칼 쓰기를 가르쳤더니 역시 칼로는 한 사람을 대적(對敵)할 뿐이니 배울 것이 못된다고 그만 두면서, 스스로 만 명을 대적할 것을 공부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이 말을 들으면 항우가 얼마나 남자다운가를 느끼게 한다.
다시 항우가 마지막으로 유방에게 쫓겨서 고향인 강남의 오(吳) 지역으로 도망하다가 해하(垓下)에 이르렀다. 이미 군사는 적어졌고, 먹을 것도 다하니 유방의 한군(漢軍)과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여 성(城)으로 들어갔는데, 유방을 따르는 군사들이 겹겹이 포위하였다. 밤중에 한(漢)의 군사들이 같은 강남지방인 초(楚)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한의 군사 가운데 이미 자기의 고향인 초지역의 병사들이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한탄을 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일화도 유명하다.
그 후에 겨우 800명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도망하였고, 다시 겨우 백 명이 남았고, 다시 28명의 기병만 남게 된 상황이었다. 그는 남은 기병들에게 말한다. ‘나는 군사를 일으켜서 지금까지 8년이 되었는데, 몸소 70여 차례의 전투를 하면서 일찍이 패한 일이 없었고 드디어 천하에 패권(覇權)을 잡았다. 그러니 지금 끝내 여기에서 곤혹스럽게 되었지만, 이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전투를 잘 못한 죄는 아니다.’ 그는 다시 세 번 싸워서 이겨서 이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다시 몸소 한(漢)의 도위 한 명과 병졸 수십 명, 수백 명을 죽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전에 부하였던 마동(馬童)이 한(漢)의 군사 속에 섞여서 자기를 잡으려고 온 것을 보았다. 이미 자기를 배반하고 한(漢)의 진영으로 갔지만 옛 부하가 한(漢)에서 출세하게 하려고, 스스로 마동에게 자기 목을 베어서 출세하라고 하면서 자살하였다.
이 얼마나 멋지고, 남자다운 죽음인가? 이러한 고사(故事)에 사람들은 매료되어 승리하여 한(漢) 왕조를 세운 유방보다 더 멋지게 여기고 있다. 그의 이런 멋진 모습과 애인과 헤어지는 장면까지 곁들여서 연극과 영화가 만들어져서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이에 비하여 승리한 유방(劉邦)의 고사는 별로 남자다운 것이 없다. 전투하여 군사를 다 잃자, 새벽에 부하인 송의(宋義)의 군사를 빼앗기 위하여 스스로 한의 왕(王)이면서도 한(漢)의 사자(使者)라고 송의의 군사를 속이고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 군사를 다 빼앗는 일을 한다. 그뿐이 아니다. 나중의 일지만 역전의 용장인 한신(韓信)에게 유람 간다고 속여서 체포하여 무장을 해제시키기도 한다.
이 두 사람을 감성적인 느낌으로 본다면 항우는 남자답고 멋있지만 유방은 속이기를 잘하는 인간형이다. 이러한 점만 본다면 정말 유방처럼 속이기를 잘하여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말이 정말이라면 잘 속이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결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방의 생각은 달랐다. 기원전 202년 한고조 유방이 한을 세운지 5년째 되는 해에 드디어 전국을 통일하고 유방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감개무량한 듯 제후와 여러 장수들을 모아 놓고 연회를 베풀었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내가 천하를 갖게 된 까닭은 무엇이고, 항우가 천하를 잃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자리에 있던 고기(高起)와 왕릉(王陵)이 대답하였다. ‘폐하께서는 사람을 부려서 성을 공격하고 땅을 경략하고서 이어서 그에게 주었으니, 천하와 더불어 그 이로움을 같이 하였지만, 항우는 그렇지 아니하여 공로를 세운 사람이 있으면 그를 해치고,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의심하였으니, 이것이 그가 천하를 잃은 까닭입니다.’멋진 대답이었다. 신하로써 황제가 된 유방을 한껏 추켜세운 대답이었다. 사실 이 대답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정도의 정책이야 누구나 다 알고 실천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유방은 이 대답을 잘 못한 대답이라고 하였다. 아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대답이라고 하면서 말하였다.‘무릇 유악(帷幄, 본부)에서 주판을 움직이고, 천리 밖에서 승리를 결판 짓는 것에서는 내가 자방(子房, 장량)만 못하며, 국가를 알차게 채우고, 백성들을 어루만지며 군량을 공급하고 양도(糧道)를 끊기지 않게 하는 것에서는 내가 소하(蕭何)만 못하며, 백만의 무리를 연합하여 싸우면 꼭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 것에서는 내가 한신(韓信)만 못하오. 세 사람은 모두 인걸(人傑)인데, 나는 이들을 채용할 수가 있었으니,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게 된 까닭이요. 항우에게는 범증(范增) 한 명이 있었지만 채용할 수 없었으니, 이것이 나에게 패배한 까닭이요.’
이 대답은 또 다른 시각(視角)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여러 신하들도 이 말에 감복하였다. 황제가 자기의 부족한 것을 확실히 알고, 자기보다 난 점이 있는 사람은 채용하여 자기를 대신하여 일하게 한 것이다. 지도자가 되어 자기보다 난 점이 있는 사람을 찾아서 부릴 수 있는 것만큼 잘하는 용인(用人)은 없다. 비록 자기보다 능력이 우수하여 자기를 밟고 넘어설지 모르는 위험은 있지만 그러나 이것을 감내 하면서도 역시 우수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용기이고 지혜이다.
겉으로 보아서 멋진 행동의 소유자인 항우, 그는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쓰는데 인색하고 항상 경계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떠났다. 유방의 중신(重臣) 가운데, 항우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먼저 항우의 겉모습이 멋진 것을 보고 달려갔지만 결국 사람을 쓸 줄 모르는 항우에게는 실망하고 떠난 것이다.
비록 2천 년 전의 고사이긴 하지만 이러한 용인술(用人術)은 오늘에도 유용(有用)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항우는 만인을 대적하는 공부를 하겠다고 하였지만 결국 이 공부는 제대로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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