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 이야기 51
세상에 나갈 사람과 안 나갈 사람
후한 말은 환관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시대였다. 생각 있는 선비들은 세상에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가 보았자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일 것이다. 선비가 자기의 뜻을 펼치려면 그 뜻을 이해하고 실천할 힘이 주어여야 하는데, 그렇게 못될 환경이라면 안 나가는 것이 백번 현명한 길일 것이다.
후한 말에 번영(樊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젊어서 학문을 연마하고, 품행이 뛰어나서 세상에 이름이 났으나 호산(壺山) 속으로 들어가서 은거하였다. 주(州)와 군(郡)에서 예를 갖추며 초청해도 나오지 않고, 공경(公卿)들이 천거하였지만 안 나왔고, 황제<安帝>가 책서를 내려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순제(順帝)가 책서(冊書)와 현훈(玄纁)을 내리면서 불렀지만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안 나갔다.
황제는 지방관을 독촉하여 그를 억지로 수레와 가마를 내어 모시고 오게 하였다. 아프다고 하니까 치료하게 하고, 고기와 술도 내고, 오관중랑장이라는 벼슬도 내렸다. 그래도 아프다고 하니까 광록대부의 벼슬을 가지고 집에 가게 하였다. 그를 초빙하였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애초에 사람들은 번영이 초빙에 응하지 않을 것을 알고 나아가서 세상을 구하라고 권고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초빙되어 와서는 기묘한 계책도 없고, 심오한 책략도 없어서 입방아꾼들은 실망했다.
이를 보고 장해(張楷)가 그에게 말하였다. ‘천하에는 두 가지 길이 있으니, 나가는 것과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나는 전에 그대가 나가면 능히 이 군주를 보좌할 수 있고, 백성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였군요. 헛되이 작위와 봉록을 향유하였으니, 나가는 것과 물러나는 것에 원칙이 없군요.’
이 사건을 보고 사마광은 말하였다. ‘옛날의 군자는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은거(隱居)하였습니다. 은거는 군자가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지만 제왕(帝王)이 일민(逸民)을 등용할 때 비천한 사람도 발탁하는 것은 진실로 그가 국가를 유익하게 하는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세속(世俗)의 이목을 따르려는 것이 아닙니다.’...‘수식하고 거짓말 하여 명예를 얻고자 하거나 기이한 행동을 낚아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은 군주의 봉록을 받지 않으면서 사사로운 이익을 다투는 것이며, 이는 이름과 실제가 상반되는 것이고, 마음과 행적이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성스러운 임금으로부터 주살(誅殺)을 면한 것만으로도 요행일 것인데, 어찌 초빙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은거한 사람을 들어서 세상에 유익하게 하려는 노력이야 꼭 필요한 것이지만 증명되지 않은 헛된 명성만으로 사람을 천거하는 것은 세상에 조금도 이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불러서 나가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인데, 자기 자신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태도를 가져야 망신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많은 사람이 발탁되어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 또 곧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도 자천타천 많은 사람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나선다. 이러한 세태를 보면서 아직도 은둔중인 사람이 이 땅에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숨고 도망하는 은둔이 아니라 나라를 구할 큰 뜻을 품고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그러한 은둔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은둔자가 있다한들 자기선전이 필요한 때라고 하면서 나서는 이 세태 속에서 발견될 리는 없을 것이다. 허튼 소리가 아니라 작은 하나라도 자기를 희생하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어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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