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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화살을 맞은 황제 사마충

삼국을 통일한 진(晉)의 두 번째 황제인 혜제(惠帝) 사마충(司馬衷)은 바보였다. 그의 재임 중에 정비인 가후(賈后)가 권력을 잡았고, 태자를 독살하는 등 전횡을 일삼다가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에게 피살되었다.
사마륜이 권력을 잡고 전횡하다가 혜제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으나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 · 성도왕 사마영(司馬穎) ·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이 연합하여 사마륜을 죽이고, 석 달 만에 원상태로 회복시켰다. 이른 바 8왕의 난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혜제는 겨우겨우 황제의 자리를 보존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권력은 이미 그가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혜제 영흥 원년(304년)에 이르자 하간왕 사마옹이 승상의 자리에 있는 사마영을 태제(太弟)로 삼으라고 요청하였다. 이 말은 혜제 뒤를 이을 황태자를 내쫓고 혜제의 동생인 사마영이 다음을 잇게 하라는 말이었다. 혜제는 이 말대로 태자를 폐위시키고 사마영을 태제로 삼았다.
태제가 된 사마영이 분수를 넘고, 사치가 심하고 권력을 전횡하자 이번에는 사공(司空)인 동해왕(東海王) 사마월(司馬越)이 여러 사람과 모의하여 업성(鄴城)에 있는 사마영을 토벌하기로 하였다. 이 말을 따라서 혜제는 또 사마영을 토벌하게 하였다. 드디어 사마월을 황제 사마충을 모시고 북쪽으로 사마영을 치러 떠났다.
사마월은 격문을 보내어 사방에서 군사를 모집하니, 달려 온 사람이 구름 같았다. 그리하여 사마영이 있는 업성에서 40리쯤 떨어진 안양(安陽)에 도착했을 때에는 무리가 10만 명이나 되었다. 사마영은 걱정이 되어서 부하들과 대책을 논의하였다. 어떤 사람은 ‘상복을 입고 나아가서 천자에게 죄를 청해야 한다.’고 하였고, 다른 사람은 ‘황제를 영접하라.’고 하였다.
또 사마영의 진영에 있던 사람 몇은 도망하여 황제 사마충이 있는 행재소로 와서 업성에는 사람이 모두 흩어졌고, 방비도 갖추어진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제 사마충의 친정(親征)은 성공하는 듯하였다.
그런데 사마영은 황제의 진영에 있다가 도망하여 온 석초(石超)를 파견하여 공격하게 하였다. 석초는 황제인 사마충 진영에서 알아채지 못하게 몰래 황제의 진영으로 다가갔다. 그러고 공격하자 황제의 진영은 연속하여 패전하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황제는 뺨을 다쳤으며, 화살을 세 대나 맞았다. 백관들과 시종들은 다 흩어져서 달아났다.
오직 한 사람 혜소(嵇紹)만이 조복(朝服)을 입고, 말에서 내려서 황제가 타고 있는 연(輦)에 올라서 황제를 호위하였다. 호위라야 자기 몸으로 황제에게 쏟아지는 화살을 막겠다는 정도였다. 사마영의 군사들이 드디어 도착하여 황제와 같이 있는 혜소를 끌어내려서 찍어 죽였다.
황제가 ‘혜소는 충신이니 죽이지 말라.’고 외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혜소에게서 튀긴 피가 황제의 옷에 묻었다. 황제도 연에서 풀 속으로 떨어졌다. 그 바람에 황제가 갖고 있던 옥새(玉璽) 여섯 개를 잃어 버렸다. 이제 황제는 죽지는 않았지만 무늬만 황제일 뿐 포로나 다름없었다. 황제 사마충은 배가 몹시 고파서 밥을 찾자, 석포가 물을 한잔 올리고 다른 사람은 가을 복숭아를 주어서 먹게 하였을 뿐이다.
사마영이 있는 업성으로 끌려가서 사마영이 원하는 대로 대사면령도 내리고 연호도 고쳤다. 사람들이 피 묻은 황제의 옷을 빨려고 하니, ‘충신 혜소의 피니 빨지 말라.’고 하였을 뿐이다. 물론 사마영의 권력도 얼마 못가서 몰락하였고, 2년 뒤에 사마월이 혜제를 낙양으로 다시 모셔 왔지만 이 해에 사마충은 일생을 마감한다.
사마충이 황제가 되었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니, 가장 가까이 있던 정비인 가후를 비롯하여 형제와 친척들이 그 자리를 탐내서 벌어진 일들이 8왕의 난이고, 오호(五胡)로 하여금 중원으로 들어오게 한 배경이다. 똑똑한 지도자, CEO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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