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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쿠데타, 담비와 매미가 조정에 가득하다

진(晉)에서는 2대 황제 사마충(司馬衷)은 황제로서의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황후 가씨(賈氏)가 정권을 휘두르니 사마씨들은 불만이 가득하였다. 드디어 조왕(趙王)인 사마륜(司馬倫)이 영강 원년(300년)에 가후(賈后)를 폐위시키고 죽였다. 이 공로로 사마륜은 권력을 잡았다.
권력을 일단 잡고 보니, 못난 황제인 사마충을 내쫓고 스스로 황제가 되고 싶었다. 드디어 꾀를 썼다. 자기가 거느리는 부하 조봉(趙奉)을 시켜서 일을 꾸미게 하였다. 조봉은 드디어 말을 꾸며냈다. 꿈에 선제를 만났는데, ‘사마륜이 의당 일찍이 서궁(西宮)에 들어갔어야 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선제란 진나라를 최초로 만들게 하였던 위나라 시대에 제갈량과 싸움을 벌였고, 위나라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던 사마의를 말한다.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에 와서 위를 뒤엎고 진을 세웠으니 진(晉)왕조로서는 아주 받들어 모셔야 하는 선조였다. 그런데 이 분이 꿈에 나타나서 사마륜이 황제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진이 이렇게 혼란스러워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 말이 한 번 나오자, 사마륜에게 아첨하고 아부하던 사마위(司馬威)가 나섰다. 사마위는 사마륜이 권력을 잡고 나서 발탁하여 시중(侍中)을 겸하게 하였던 인물이었다. 시중은 황제를 가까운 거리에서 모시는 직책이었다. 황제를 받들어 모셔야 할  사마위는 도리어 바보 같은 황제 사마충에게 윽박질러 황제의 인새와 인수를 빼앗았다. 그리고 사마륜에게 황제의 자리를 선양한다는 조서를 짓게 하니 드디어 사마륜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사마륜은 군대를 동원하여 요소요소에 배치하였고, 갑옷 입은 병사를 황제가 있는 대전(大殿)에 배치하고, 상황을 설명하니 감히 위반하는 사람이 없었다. 연호도 건시라고 고치고, 전 황제인 사마충를 태상황(太上皇)이라고 명목상으로는 올렸지만 실제로는 금용성에 유폐하고 감시하였다.
그리고 양왕 사마융(司馬肜)을 재형(宰衡)이라고 하여 재상보다 높은 명칭을 주었고, 하소(何劭)를 태재(太宰)로 삼고, 손수는 시중, 중서감, 표기장군, 의동삼사로 삼았고, 의양왕인 사마위는 중서령으로 삼고 장림은 위(衛)장군으로 삼았다. 그 나머지의 무리들도 모두 경(卿)과 장(將)으로 삼았는데, 원래 계급의 순서를 뛰어넘었으니 이를 다 기록할 수가 없다.
하다 못하여 아래로는 노복으로 병졸이 된 사람에게까지 작위를 덧붙여 주었다. 그러하니 조회를 열면 높은 벼슬아치가 너무 많았다. 당시에 높은 직급의 관원들은 조회 때에 멋  있는 모자를 썼는데, 무관은 모자에 담비의 꼬리털을 붙여서 북방 추운 지방에서 고생하는 것을 의미하게 하였고, 문관은 매미 날개와 같은 재료로 만든 모자를 쓰게 하여서 청렴결백함을 나타내게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고급 모자를 만드는 재료가 부족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사람들은 ‘담비의 털이 모자라면 개꼬리로 잇는다.’고 비아냥대었다. 하여간  시중과 산기상시가 97명이나 되었으니, 요즈음 식으로 말하자면 장관이 100명이나 되는 셈이다. 사마륜은 황제가 되어서 관직과 작위를 남발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높은 대우를 받으면 모두 자기편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사마륜이 인심을 썼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사마경과 사마옹, 사마영이 군사를 일으켜서 사마륜을 죽이고 사마충이 복위된다. 사마륜의 약은꾀가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후에 계속되는 제후왕들의 반란으로 전후 8명의 왕이 난을 일으킨다. 이를 8왕의난이라고 부르지만 이것으로 결국 진(晉)을 멸망의 길로 간다.
요즈음도 정치가 가운데 얕은꾀를 써서 표를 많이 얻으려고 공약을 남발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들으면 내게 이로울 것 같지만 결국은 ‘장님 제 닭 잡아먹는’ 바보짓이다. 헛된 인심 그것은 나라를 망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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