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晉)의 무제인 사마염이 죽고 그 아들 사마충(司馬衷)이 황제의 자리를 이어 받았는데, 황후가 된 가비(賈妃)는 이제 그를 제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다. 진무제 사마염(司馬炎)이 며느리 가비를 내치고 싶었으나, 위(魏)나라 시절에 쿠데타를 일으킨 사마씨의 위기를 구해낸 그 아버지 가충(賈充) 때문에 참았던 것이다. 사마씨들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위(魏)에서 실권을 잡았을 때에 황제인 고귀향공이 이를 참지 못하고 젊은 결기로 직접 칼을 빼 들고 사마씨를 죽이려고 하였었다. 이때에 황제인 고귀향공을 죽이라고 명령한 사람이 가충이었다. 사마염은 가충이 없었다면 사마씨는 실제로 위기를 맞을 뻔하였던 것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가비는 시아버지인 사마염이 살아 있을 때에도 문제를 일으켰었는데, 이제는 무서운 시아버지도 죽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천성의 음란함과 포악함이 날로 심하여졌다. 그리하여 태의령(太醫令)인 정거(程據) 등과 통정(通情)하였다. 이것도 모자라서 사람을 밖에 내 보내어 나이 어린 미소년을 붙잡아서 대나무 상자에 넣어서 몰래 궁궐로 들여오게 하였다. 이러한 음란한 일이 밖으로 누설될까 두려워서 왕왕 그 미소년을 살해하기도 하였다.
이를 아는 사람, 특히 그의 가까운 친척들은 걱정이 많았다. 황후인 가비의 이러한 짓거리가 문제가 된다면 자기들에게도 화가 미칠 것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 가운데, 가후의 사촌 오빠인 가모(賈模)와 가후와 내외종간인 배왜(裴頠)가 특히 걱정한 나머지 가후를 폐위시키고 사숙비(謝淑妃)를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가후의 남편인 혜제(惠帝) 사마충에게 있었다.
그들은 ‘주상께서 스스로 황후를 폐출시키고자 하는 뜻이 없는데 우리들이 이 일을 오로지 실행하였다가 만약에 황상이 마음속으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면 장차 우리들은 어찌 되겠는가?’ 말하자면 가후를 폐위시킬 이유도 있고, 방법도 있지만 정작 가후의 남편은 그 음란한 여인을 폐위시킬 생각이 없다고 판단한 셈이었다. 그래서 말로 가후에게 타이르려고 하였지만 가후는 이들이 도리어 자기를 헐뜯는다고 생각하니 방법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晉) 왕조가 제대로 굴러 갈 리가 없다. 북쪽에서 이적(夷狄)들이 중원지역으로 내려와도 이를 막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적들을 본 고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사융론(徙戎論)이 나왔다. 그래 못 들은 척 하였다. 오직 개인적으로 권력을 잡고 치부(致富)하려는데 혈안이 되니 ‘전신론(錢神論)’이 나와서 돈이 바로 귀신이라고 주장하였는데, 바로 돈이 제갈량이라는 말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타개해야할 책임은 당연히 황제인 사마충에게 있었다. 그러나 사마충은 거의 바보였다. 한번은 정원을 거닐다가 청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듣고, ‘저 개구리가 우는 것은 관부(官府)에서 시켰는가?’라고 물었다. 또 백성들이 굶어 죽었다고 보고하자 ‘왜 고기죽을 먹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그냥 웃자고 한 말이 아니었다. 개구리가 우는 것은 정부에서 시켜서 울게 한 것이고, 밥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사물의 판별력이 전혀 없는 바보였다. 황제가 이렇게 바보임을 안 신하들은 음란한 황후를 내 쫓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정신이 제대로 든 사람이라면 세상이 혼란해 질 것을 알게 되었다. 북방의 이적(夷狄)들은 끊임없이 중원지역으로 내려오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각기 나누어 돈을 벌기에 혈안이 되었고, 황제는 바보이고 황후는 음란한 것을 보고 세상이 어지러워 질것을 모를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세상을 외면하였다. 산으로 들어가거나 무관심으로 개인적인 유유자적을 택하며 살아갔다. 그러니 잠시 후에는 오호(五胡)가 쳐 내려오고 진(晉)은 남쪽으로 도망해야했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지 돌아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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