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에는 대제학 윤준(尹准)과 세종이 자치통감훈의를 편찬하면서 가진 대화가 실려 있다. 세종이 북송시대의 사마광이 19년에 걸쳐서 편찬한 자치통감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읽는데 불편함을 덜어주려고 ‘자치통감훈의’를 편찬하게 하였던 것은 세종 16년(1434년) 6월의 일이었다.
자치통감훈의의 편찬을 명령받은 사람들이 편찬한 내용을 저녁이 되면 그날그날 세종에게 보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세종은 친히 그 원고의 잘 못된 것을 교정하였고, 그러다가 어느 때에는 밤중에 이르기도 하였다. 어느 날 세종은 이 책임을 진 윤준에게 말하였다. ‘근래에 이 책을 보면서 마침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유익하고 총명이 날로 늘어 가며 잠자는 것이 줄었다는 것을 알았소.’
이 말을 대단히 중요한 말이다. 어느 임금이 책을 보느라고 밤잠을 줄인단 말인가? 그런데 세종은 자치통감을 보면서 밤잠을 줄였다고 고백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윤준은 ‘밤에 작은 글씨로 된 책을 보면 아마도 눈병이 생길까 걱정입니다.’라고 세종의 건강을 걱정하였다.
세종은 어떤 임금인가? 오늘날에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추앙받고 있고, 그럴만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세종 시대에 이룩한 문화적 찬란한 모습을 다시금 서술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치통감훈의를 편찬한 것은 훈민정음이 반포되기 10년 전쯤의 일이다. 그리고 이를 인쇄하여 각 지방 관원들에게 배포하기 위하여 이 책을 인쇄할 종이 30만권을 준비하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한 것임에 틀림없다.
세종같이 위대한 군주가 왜 자치통감에 훈의를 달고, 이를 모든 관원들에게 읽히고자 하였는가? 모름지기 제왕(帝王)이란 치도(治道)를 찾아야 하고, 이를 실천하여 치세(治世)를 이룩할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세종은 자치통감 속에서 치도(治道)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고, 치도를 이루는 데는 제왕을 돕는 수많은 관료들이 동참해야 하기 때문에 자치통감을 관료들에게 읽히려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치세를 이루었다.
사마광에게 자치통감을 편찬하라고 명령한 북송시대의 영종도 똑같은 생각을 가졌다. 북쪽으로는 요(遼)가 있고 서쪽으로는 서하(西夏)가 있는 국제 환경 속에서 치도를 역사에서 찾으려고 하였으나, 역사책은 너무 많아서 시렁 위에 얹어 놓고 필요할 때 사전처럼 찾아보는 구실 밖에 못하고 있었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과 그 속에서의 변화를 알려는 것인데, 단란조보(斷爛朝報) 같은 역사지식으로는 제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사마광이 살던 북송시대에는 이미 정사(正史)로 알려진 기전체 역사책만 이미 1600권이 있었다. 이것을 읽고 그 속에서 치도를 찾으라는 말은 모래 속에서 금을 캐보려는 생각과 다름이 아니다. 그래서 영종은 사마광에게 통사(通史)이면서 변화의 모습을 볼 역사책을 편찬하게 하였고, 그 결과가 자치통감의 편찬이었다. 말하자면 제왕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봄직한 생각을 북송의 영종도 가졌고, 조선의 세종도 가진 셈이었다.
마침 우리 역사에는 정말로 제왕다운 제왕인 세종을 갖게 되어 치세를 경험하였다. 많은 제왕이 있었지만 정말로 치도(治道)를 찾아서 치세(治世)를 이룩하려고 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말로야 어느 제왕이든지 치세를 이룩하려 한다고 하였지만 겉으로 시늉만 하였지 정말로 이를 체득한 사람이 적은 것은 세종시대처럼 치세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오면서 세종이후로는 자치통감에서 치도를 찾을 수 있다고 알려지자 이 책은 지도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러나 혹여 읽는 시늉만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있다. 기껏해야 원 자치통감의 6분의 1 밖에 안 되는 절요(節要)를 읽었고, 주자학을 신봉하면서 자치통감강목을 읽었다. 그러나 그것도 앞부분이나 읽고 전체를 다 읽은 양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말막음만 한 셈이었다. 그러니 치세가 이루어 질 수가 없지 않았겠는가? 절요나 강목을 통독하였다고 해 보았자 사마광이 말한 6분의 1 밖에 보지 못하였으니, 마찬가지이다.
자치통감 294권이 많으니 바쁜 속에서 언제 다 읽을 것이냐고 항변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삼국시대에 여몽(呂蒙)이 발심(發心)하여 책을 읽어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되었다는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9400Km의 피난의 행군인 대장정을 떠나면서도 자치통감을 짊어지고 갔고 이것을 17번이나 읽었던 마오쩌뚱보다 바쁜가라고.
위대한 세종대왕을 우리 역사에서 모신 것은 행운이지만 이제라도 치세를 이루려고 치도를 공부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자치통감을 읽지 않고 귀동냥이나 하고서 아는 척하려고 한다면 이는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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