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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태자의 자리만 중요했던 가비(賈妃)


진(晉)을 세운 사마염(司馬炎)의 비(妃)인 가(賈)씨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많이 남긴 사람이다. 사마염과 이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태자 사마충(司馬衷)인데, 후에 등극하여 혜제(惠帝)가 되었지만 정치는 실제로 모후(母后)인 가후(賈后)가 담당하였고, 그 후에 이른 바 8왕의 난이라는 소용돌이로 들어가서 서진은 세워진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서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한 사마충이 태자 시절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조정에 있든지 아니든지 모두가 사마충은 아둔하고 어리석어서 뒤를 이어서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진(晉)이 위(魏)를 이어 받은 지 겨우 10여년 남짓한 시점에서 진(晉)의 앞날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에 정북(征北) 대장군인 위관(衛瓘)은 사마염에게 불려 와서 상서령이 되었다. 상서령은 조정에서 행정책임을 맡는 자리이다. 이 자리에 온 위관 역시 사마충의 됨됨이를 알고 황제를 가까이서 모시면서 바른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태자를 험담하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황제가 연회를 베푸는 기회를 이용하여 술에 취한 척하면서 황제에게 다가가서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다가 그만 두기를 세 번이나 하였다. 황제 사마염이 말해 보라고 재촉하였더니 황제가 앉은 의자를 어루만지면서 ‘이 자리가 애석해 질 수 있습니다.’하였다. 사마염도 크게 깨달았지만 겉으로 아는 체를 할 수 없었다. ‘공이 정말 크게 취했구려!’라고 하면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사마염은 태자를 시험해 보고자 하였다. 사마염은 상서대에 당시에 계류 되어 있던 현안(懸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를 글로 써서 밀봉하여 태자인 사마충에게 보내어 답을 써 보게 하였다. 사마충이 답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그의 모후인 가후(賈后)는 잘 알았다. 그래서 비밀리에 밖에 있는 사람을 불러서 그 해답을 쓰게 하였다. 멋있게 잘 써 왔고 사마충은 이를 손수 베껴 썼다.
이를 황제에게 보내려고 할 즈음에  태자의 수행원인 장홍(張泓)이 말하였다. ‘안 됩니다. 태자가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이렇게 고전에서 나온 문구로 쓰인 이 대답을 태자의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가비는 아차 하였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네가 좋은 답을 써 준다면 부귀를 너와 함께 누릴 것이다.’ 드디어 장홍은 태자의 수준을 감안하여 직설적으로 대답을 적었다.
태자 사마충은 장홍이 쓴 초안을 보고 베껴 써서 황제인 사마염에게 받쳤다. 사마염은 이를 받아 보고,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자질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는지 크게 기뻐하였다. 이리하여 사마충은 위기에서 벗어났다.
가후는 남편 사마염이 죽으면 아들이 황제에 오르고, 뒤를 이을 아들이 바보이니, 그 바보 아들을 대신하여 자기가 권력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하였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사마염이 죽은 후에 가후가 전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권력은 얻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욱 어렵다. 권력을 잡은 지 10년 만에 가후는 사마륜에게 피살되고 8왕의 난이 시작된다.
가후가 아들의 무능을 알았더라면, 자기 남편과 함께 일군 진(晉) 왕조를 위하여서 크게 양보했어야 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권력을 얻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나라도 망치고 본인도 좋은 끝막음을 하지 못하였다. 덕택에 북방 민족들은 중원지역으로 물밀 듯 내려 왔으니,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많았다. 죽 쑤어서 개 좋은 일 한다는 속담이 이에 해당하는가? 앞날을 못 보는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죽 쑤어서 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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