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漢)으로부터 선양(禪讓)을 받은 조(曹)씨의 위(魏)에서는 사마씨의 쿠테타로 실권은 이미 모두 사마씨에게로 넘어갔다. 이때에 위의 황제는 속이 상했다. 스스로가 명색에 황제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곳의 우물에 황룡(黃龍)이 나타났다고 보고 하면서 길조(吉兆)라고 하였지만 황제는 오히려 좋은 징조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답답한 마음에 잠룡시(潛龍詩)를 지어서 자기 마음을 표현하였다. ‘가련한 용이 외롭고 찬 곳에 쳐 박혀 있구나. 깊은 물속을 뛰쳐나오지도 못하여 구천(九天)을 날수 없고, 아래로 떨어져 내려와 농사짓는 밭에도 있을 수 없구나. 가련한 용이 우물 밑에 떨어져 있으니 흙속의 미꾸라지가 눈앞에서 춤을 춘다. 용이 이빨과 손톱을 숨기고 탄식하고 있으니 나도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로다.’ 황제가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술회한 것이다.
주역에 보이는 건괘(乾卦)의 풀이를 가져다가 시를 지은 것이다. 건괘의 여섯 양효(陽爻) 가운데 맨 아래에 있는 것을 잠룡(潛龍)이라고 보고 이는 쓰일 수 없는 상태로 설명하고, 그 다음에는 현룡(見龍)이라 하여 밭에서 일하는 용을 상징하는 것으로 설명하였고, 밑에서 위로 다섯 번째 효를 비룡(飛龍)이라 하여 하늘에 있는 것을 형상한 것으로 설명하는데, 이를 토대로 지은 시이다.
하루는 황제가 시중인 왕침(王沈)과 상서인 왕경(王經) 그리고 산기상시인 왕업(王業)을 불러서 황제 스스로 나아가서 권력자인 사마소(司馬昭)를 쳐야겠다고 하면서 같이 할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무리였다. 당시에 황제를 지지하는 세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군대도 사마소가 관장하였고, 관료도 모두 사마소가 임명하고 관장하였고, 물자도 황제가 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으니, 황제란 그저 허울뿐이었다. 그래서 안 된다고 반대하였다.
황제는 화가 나서 자기가 쓴 조서를 품에서 꺼내서 땅에 던지며 ‘거사하였다가 죽더라도 무엇이 두렵겠는가? 한번 해 보겠다’고 하면서 만용을 부렸다. 따를 군사가 없자 창두(蒼頭)와 관동(官僮) 같은 하인들을 끌고 스스로 연(輦)에 올라서 칼을 뽑아 들고 궁궐을 나갔다. 사마소를 치겠다는 것이다.
이 일은 바로 사마소에게 보고되었고, 사마소의 동생인 둔기교위 사마주(司馬伷)가 황제를 막으려고 나갔는데, 주위에서 황제에게 덤빌 수 있느냐고 나무라자 물러났다. 이에 중호군인 가충(賈忠)이 달려 와서 황제를 막으며 싸웠는데, 황제가 직접 칼을 뽑아 들고 싸웠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황제인데, 함부로 덤비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하였다. 사마소 측이 곤란하게 된 셈이다.
이때에 태자사인인 성제(成濟)가 가충에게 물었다. ‘사태가 급한데 어찌해야 합니까?’ 가충이 대답하였다. ‘너희들은 사마소가 기른 것은 바로 오늘을 위하여서이다. 무엇을 물어 보는가?’ 황제라도 치라는 뜻이었다. 성제는 창을 들어 황제를 찌르자 황제는 수레 아래로 떨어져서 죽었다. 황제가 신하의 손에 죽었고, 죽은 후에도 황제로서의 시호도 받지 못하여 고귀향공으로 강등 된다.
이 이후로 사마소는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는 뜻으로 황제를 직접 죽인 성제와 그의 형인 성졸(成倅)을 죽이는 것으로 일을 일단 마무리 한다. 그러나 사마씨는 직접 나라를 빼앗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다음에 오른 황제가 원제였지만 이제는 언제 위의 황제가 사마씨의 진(晉)에 선양하느냐하는 절차만 남게 되었다.
고귀향공의 입장을 생각하면 결기를 부려서 화를 낼만도 하다. 그러나 모든 일은 앞뒤를 살피고, 승산이 있는지를 계산하고,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것인데, 황제라는 사람이 마치 어린애처럼 무모한 짓을 한 것이다. 사마씨에게 권력이 넘어가지 않게 미리 조치를 취하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정도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왕조가 오래 갈 리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