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위(魏)의 대장군 조상(曹爽)은 위(魏)의 권력을 거의 다 잡고 있었다. 명제(明帝)가 죽자 조카인 여덟 살짜리 소릉여공이 즉위하였으므로 군사권을 다 휘어잡고, 조조 시절부터의 대 전략가였던 사마의(司馬懿)를 배척하였다. 사마의는 비록 지위는 높은 자리에 있었고, 제갈량과 싸웠던 영웅이었지만 이제는 한갓 뒷방 신세를 져야 했다.
조상은 그의 수족 같은 하안(何晏) 같은 사람들과 제멋대로 술을 먹고, 사치하며 또 꺼릴 것이 없이 자기 형제들과 함께 밖에 놀러 가기도 하였다. 환범(桓範)이 조심하라고 충고하였지만 듣지 않고, 멋대로 정사(政事)를 처리하였다. 그런데 경계를 맞대고 있는 청하(淸河)와 평원(平原)이 관할지역의 경계를 두고 오래 다투었는데, 증거를 들이 대는 손례(孫禮)가 자신을 원망한다고 생각한 조상은 그를 탄핵하여 5년형을 주기도 하였다. 손례가 사마의에게 와서 그 억울함을 호소하자 사마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으나, 겉으로는 모르는 척 하였다.
조상 쪽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만 사마의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조사의 패거리인 이승(李勝)이 형주(荊州)자사로 나가면서 태부(太傅)의 지위를 갖고 있었던 사마의에게 인사차 들렀다. 그런데, 보니 사마의는 몸의 한쪽을 못 쓰는 체 시비(侍婢)의 도움을 받으면서 죽을 마시는데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대화를 하였다. 이승이 형주자사로 나가게 되었다고 말하자 ‘병주(幷州)는 흉노와 가까운 곳이니 잘 대처하시오. 그리고 내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를 잘 부탁합니다.’라고 엉뚱하게 응대하였다. 병주는 전방이고, 형주는 중심부인데, 형주를 병주로 잘 못 들은 척 한 것이다. 몇 번에 걸쳐서 이승이 병주가 아니고 형주라고 하자 그때야 알 아 듣는 척하고 ‘나이가 먹어서 그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공로를 세우라고 좋은 말로 보낸다.
이승은 ‘사마공은 시체처럼 남은 기력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겉모양과 정신은 이미 나뉘었으니 염려할 것이 못됩니다.’라고 보고 하였다. 조상은 더 이상 염려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다음해에 바로 문제가 생겼다. 소릉여공 가평 원년(249년) 정월 초엿샛날 황제는 대장군 조상, 중령군 조희, 무위장군 조훈, 산기상시 조언이 모두 좇아갔다. 경사(京師)에는 중요한 인물이 아무도 없게 되었다. 태부인 사마의는 황태후의 명령을 가지고 여러 성문을 닫아걸고 군사를 챙겨서 무고(武庫)를 점거하게 하고, 병사를 주어서 낙수의 부교를 점거하게 하였다. 황제 일행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사도(司徒)인 고유(高柔)를 불러서 가절(假節)을 가지고 대장군의 업무를 수행하게 하였고, 태복(太僕)인 왕관(王觀)에게 중령군의 일을 임시로 수행하게 하여 조희의 군영을 점거하게 하였다. 이어서 황제에게 조상의 좌악을 상주하였다. 내용은 대장군 조상은 죽은 명제(明帝)의 고명(顧命)을 배반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사마의의 쿠데타는 이루어졌고, 권력은 사마씨에게 돌아갔고, 드디어 15년 뒤에는 위(魏)는 사마씨의 진(晉)으로 바뀐다. 조상의 허황된 호기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마의를 못 당한 것이다. 알맹이가 없는 호기란 원래 그런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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