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劉備)의 뒤를 이은 촉한(蜀漢)의 유선(劉禪)은 제왕 감은 못되었지만 어쨌든 황제가 되었다. 황제는 좀 모자라도 아버지가 뽑았던 인물들은 촉한의 조정에 여전히 그득하였다. 제갈량의 뒤를 이은 장완(張琓)이 잘 일을 처리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자 병이 들어서 자기가 맡은 대장군의 업무를 비의(費禕)에게 맡기게 되었다.
그동안 비의는 상서령을 맡아서 행정업무를 총괄하였다. 아직도 촉한은 오(吳) · 위(魏)와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 업무는 산같이 쌓였다. 그러나 비의는 판단력도 좋고, 문서를 살피는 속도도 놀랍게 빨랐으며, 기억력도 대단하여 아침저녁으로 잠깐씩 업무를 보고 중간에 빈객도 접대하고 놀이도 즐기면서 업무를 잘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장완의 일을 맡아야 했으므로 그 뒤는 비의의 부관으로 있던 동윤(董允)이 맡았다.
동윤은 비의처럼 일을 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열흘 동안 비의처럼 해 보니, 일은 자꾸 뒤틀렸다. 바로 자기의 능력이 모자라는 것을 알고,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일에 몰두하여 어느 정도 일을 꾸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동윤 마저 죽었다. 그 뒤를 여예(呂乂)에게 상서령을 맡겼는데, 이때부터 서서히 환관 황호(黃皓)가 등장하였다.
사실 황호는 환관으로 간사하였지만 총명하여서 유선이 무척 아꼈지만 그러나 동윤 때문에 본색을 드러내지 못하였던 인물이다. 동윤은 공정하고 밝게 일을 처리하고 건의하며 최선을 다 하여 충성하면서 위로는 황제인 유선에게 엄하게 규제하였고, 아래로는 간사한 환관인 황호를 자주 나무라니 국정(國政)은 제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황제 유선은 그의 엄격함 때문에 동윤을 꺼렸었는데, 이 동윤이 죽은 것이다.
원래 비상한 재주를 지닌 비의는 동윤이 죽자 재주가 많은 진지(陳祗)를 시중(侍中)으로 삼았다. 진지는 위엄 있는 용모를 갖추었고, 기예도 많았으며, 지혜와 술수도 뛰어나서 대단히 똑똑하다고 생각하여 특별히 천거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였다. 재주꾼인 진지와 환관 황호가 안팎에 있게 되자 황호는 정치에 간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중상시(中常侍)까지 올라가서 위엄의 칼자루를 휘둘렀다.
또 시중인 진지는 황제 유선에게 아부하고 그의 듯에 영합하면서 황제에게 총애를 받고자 하였다. 이때에 황호는 황제 곁에서 말을 얽어내어 조끔씩 황제에게 죽은 동윤을 헐뜯으며 진지를 옹호하였다. 그리하여 황제는 동윤이 자기를 가볍게 보았다고 여기고 원망을 쌓게 만들어갔다. 황제 유선은 이제 아부하는 진지와 황호가 진정을 자기를 위한다고 생각하였지만, 오(吳)·위(魏)의 틈바구니에서 더 이상 국력을 신장(伸張)시킬 수 없었고 끝내 위(魏)에 항복하는 운명을 만난다.
흔히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을 하지만 당장은 입에 단 꿀맛을 더 사랑한다. 단 꿀을 버리고 쓴 약을 가까이 하면 몸은 건강해지는 것처럼 자기를 절제하고 통제하는 규제를 해야 하는데, 보통사람은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고도 역사 속에 나오는 촉한의 후주(後主) 유선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수 있겠는가?<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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