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아마도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하고자 하는 일을 맡겨야 할 사람을 보는 일일 것이다. 촉한에서는 유비가 죽은 다음에 여러 해 동안 제갈량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비의 위도 역시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촉한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여 조용한 몇 년이 흘렀다.
그런데 드디어 제갈량이 동쪽으로 향하여 위(魏)를 공격하려고 하여 회의를 소집하였다. 승상인 제갈량 밑에서 군사문제를 총괄하는 위연(魏延)이 자오곡(子午谷)을 지나는 험한 길로 위(魏)를 공격하여 그 허(虛)를 찌르자고 하였다. 그러나 제갈량은 이 계책이 위험하다고 하여 안전한 길을 택하려고 겉으로는 야곡으로 간다고 하면서도 지금의 감숙성인 농우(隴右)를 빼앗는 우회(迂回)의 방법을 선택하였다.
제갈량이 출동한다는 소식을 들은 위(魏)에서는 아무런 방비를 안 하고 있다가 조야(朝野)가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오히려 위의 황제 조비는 ‘손자병법’을 내세워 ‘적군을 유치하는 결과이니 걱정 없다.’고 하였다. 촉한은 약하고 위는 강한데, 그동안 산악지대에 머물러서 공격할 수 없다가 오히려 촉이 제 발로 밖으로 나온다고 하니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을 한 것이다.
한편 제갈량은 공격의 선봉에 설 사람으로 재주와 그릇이 보통을 넘는 마속(馬謖)을 선택하였다. 전에 유비가 살아 있을 때에 마속을 ‘말이 실제보다 지나친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제갈량에게 주의를 환기시킨 일이 있었지만 제갈량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의 옛 장수인 위연이나 오의를 쓰지 않았다. 마속에게 위의 장합(張郃)과 싸우게 한 것이다.
마속은 일단 제갈량의 통제를 벗어나자 행동거지가 번거롭고 소란스러웠는데, 병사들이 먹을 물이 필요하지만 물가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내려와서는 또 성을 점거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은 장합에게 물 긷는 통로를 끊겨서 크게 패배하였다. 제갈량은 이제 더 이상 공격할 방법이 없어서 적당히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마속을 하옥시켰다가 죽였다. 그리고 스스로 마속의 제사에 참석하여 눈물을 흘리고 그의 남은 아이들에게 은전을 베풀면서 전과 같이 길러 주었다.
이를 본 장완(張琬)이 제갈량에게 말하였다. ‘옛날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옛날에 진문공(晉文公)이 초(楚)와 싸워서 이겼지만 얼굴에 여전히 근심을 띠우며, 우리가 이번에는 이겼지만 초(楚)에 성득신(成得臣)이 살아 있으면 우리의 재난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하였지요. 그런데 초에서는 성득신에게 패전의 책임을 지워 죽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진문공은 뛸 듯이 기뻐하였습니다. 마속이 비록 실패하였지만 한 사람이라도 아쉬운 판에 유능한 인사를 죽였으니, 적이 기뻐하고, 우리를 위하여 어찌 슬픈 일이 아닙니까?’
이 말을 들어도 제갈량은 아직도 자기가 무엇을 잘 못한 것인지 몰랐다. 오히려 ‘적을 제압하려면 법률을 분명히 시행하여야 합니다.’ 법률이 시행되지 않으면 이 난국을 타파할 방법이 없다고 굳게 믿은 것이다. 그래서 마속이 비록 유능하지만 실패하였으니 그에 대하여 처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말 투였다. 그러나 결과는 비록 훗날이지만 제갈량이 염원한 대로 산악지대에서 벗어나서 평야지대인 위(魏)를 공격하는 것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훗날 사마의와의 대결에서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죽음을 만난다.
꾀가 많은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제갈량을 으뜸으로 꼽는 사람이 열에 일고여덟은 된다. 모든 사람이 제갈량을 꼽지만 그가 사람 보는 안목은 유비만 못하였고, 판도를 읽는 안목은 장완만 못하여 적을 위하여 나의 사람을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다. 마속을 선봉으로 세운 것은 사람을 잘 못 본 것이고, 그를 죽인 것은 위의 조비를 위하여 취한 조치가 되어버렸다. 당장 자기의 권위는 조금 올라갔을지 몰라도 국가를 위한 큰 줄거리는 놓쳤다. 모든 일을 하면서 몇 번이고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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