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가장 기반이 없이 등장한 인물이 유비(劉備)였지만, 이를 극복하는 방편은 장비와 관우 외에 지모(智謀) 있는 인물로 제갈량(諸葛亮)을 영입하는 일이었다. 특히 형제의 의를 맺은 관우, 장비와는 달리 제갈량을 영입하면서 이른 바 유비가 직접 세 번이나 제갈량의 초당(草堂)에 찾아 갔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런데 위(魏), 오(吳)와 경쟁하던 가운데, 조비가 후한의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고 정식으로 위(魏)의 황제에 오르자, 유비는 조비가 헌제로부터 찬탈(簒奪)한 것이라고 하면서 한(漢)은 유(劉)씨에 의하여 부흥되어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 걸고 황제에 올랐다. 이를 보통 촉(蜀)에 있던 한(漢)나라라는 말로 촉한(蜀漢)이라 부른다. 그러나 유비는 황제에 오른 지 겨우 3년 만에 병이 들었다.
자기가 죽은 다음에 황제의 자리는 당연히 그의 아들 유선(劉禪)이 뒤를 이어야 하지만 늦게 둔 아들이라 겨우 17세였다. 뿐만 아니라 능력으로 보아서 난세를 헤쳐가기가 쉽지 않은 인물인 것은 아버지인 유비도 알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죽음을 앞둔 유비는 고민하였을 것이다. 아들은 무능하고 그 옆에는 천하의 지모인 제갈량이 있는데, 제대로 황제 자리를 지킬지 알 수 없었다.
먼저 제갈량을 불렀다. 그에게 태자를 보필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말하였다. ‘그대의 재주는 조비의 열배나 되니, 반드시 나라를 안정시켜서 끝내 큰일을 완성시키시오.’ 첫 마디는 촉한을 굳건하게 세우라는 부탁인 것이다. 국제 관계에 대한 말인 셈이다. 다음으로는 촉한 내의 부탁이었다. ‘만약에 뒤를 이을 아들이 보필을 받을 만하다면 보필해 주시오. 만약에 그러한 재목이 안 되면 그대 스스로 자리를 차지하여도 되오.’ 자기 아들인 유선이 황제의 재목이 못되면 제갈량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가도 좋다는 말이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말 자체로서는 조금도 흠잡을 데가 없다. 나라가 우선이지 아들이 우선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유비가 유씨의 나라를 부흥하겠다고 하였는데, 제갈씨가 황제가 되어도 좋다는 말은 말이 되지 않는 것임에도 이를 입 밖에 냈다. 이러한 유비의 유언을 두고 그가 대단히 훌륭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치통감음주를 단 원대의 호삼성(胡三省)은 ‘옛날부터 어린 아이를 부탁하는 주군 가운데 소열제인 유비만큼 분명하고 통달한 사람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제갈량의 입장에서 누가 보아도 유비가 죽고 난 다음의 모든 권력은 제갈량에게 있었다. 황제에 새로 오를 유선이 있었지만 명목만 황제라고 하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황제로서의 경륜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황제의 권한을 집행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제 유비가 없는 세상에는 제갈량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유비는 할 걸음 더 나아가서 아들 유선을 불러서 유언을 남겼다. ‘사람이 50세가 되어서 죽는다 하여도 요절(夭折)이라 부르지 않는데, 나의 나이 이미 60여세이니 다른 무슨 한스러움이 있겠느냐? 그러나 너의 형제들이 마음 쓰일 뿐이다. 부지런히 하고 또 부지런히 하여라. 악한일은 작아도 하지 말고, 선한 일이면 작아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현명함과 덕스러움만이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다. 네 아비의 덕은 얕으니 본받기에는 많이 모자란다. 너는 승상과 더불어 일을 해 나가되 그를 아버지처럼 섬겨라.’
보통은 황제가 되면 황제로서의 권한을 가지고 정치를 잘 하라는 유언을 남김직한데, 승상인 제갈량에게 모두 맡기라는 말이었다. 그 후에 유선이 황제에 올랐고, 모자라는 행동을 하였지만 제갈량은 끝내 황제로 섬기는 일을 다 하였다. 유선이 횡사(橫死)하지 않고 수(壽)를 다한 것은 유비가 남긴 유언 덕택인가? 제갈량의 훌륭한 인품 덕택인가? 쉽게 결론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유비의 유언은 크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자식을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주변을 어떻게 정리하고 무슨 말을 하고 떠날 것이냐를 생각해 볼 대목이다.<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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