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 남북조 시대에 모용씨라는 부족은 자기들이 세운 연(燕, 전연) 나라를 멸망시켰던 전진이 망하자 다시 연나라를 부흥시켰는데, 보통 후연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후연은 오랜만에 다시 나라를 세웠으니 모용씨가 단결하여 강한 나라를 만들어 다시는 멸망하는데 이르지 말 준비를 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하였다. 그 후에 남연과 북연, 후연이 나뉘고 서로 다투었다. 모용씨끼리 권력다툼을 한 것이다. 큰 것을 버리고 작은 이익에 집착한 셈이다.
이러한 사사로움에 매몰된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후연에서는 황제 모용희가 들어섰는데 특히 황후 부씨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주고자 하였다. 아마도 왕조를 책임진 황제가 왕조보다 그 황후를 더 사랑했던 것 같다.
한번은 이웃하는 고구려를 공격하여 요동성을 함락시켰다. 그런데, 장병들에게 요동성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말렸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황후 부(苻)씨와 연(輦)을 타고 같이 가겠다는 것이었다. 아끼는 황후에게 멋있는 장면을 보여 주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그것은 전장(戰場)에서 벌인 어처구니없는 명령이었다. 그 덕택에 고구려는 다시 방어 준비를 해서 다 함락된 요동성은 무사할 수가 있었다.
모용희는 또 황후 부씨를 위하여 승화전(承華殿)이라는 큰 전각 짓게 하였는데, 흙을 등짐으로 져다가 산을 만들려고 하니 흙 값이 곡식 값과 같게 되었다. 나라를 팔아 황후의 환심을 사려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물론 이를 말리는 신하가 있었지만 바로 목을 베어 죽였다.
한번은 황후 부씨(苻氏)가 늦여름에 언 생선을 먹고 싶어 하였다. 요즈음에야 냉장고가 있으니까 그런 것쯤이야 서민이라도 가능하지만 이 시절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모용희는 언 생선을 구해 오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를 구해 오지 못한 것은 뻔한 일, 모용희는 그 책임을 물어 관리의 목을 베었다.
하여간 모용희가 이렇게 끔찍이 아끼는 황후 부씨가 죽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황제 모용희는 통곡하다가 울분으로 혼절하였는데 오랫동안 있다가 다시 소생하였다. 그녀를 장사지내면서는 마치 부모가 죽은 것 같이 하여 참최(斬衰)의 복장을 하고 죽을 먹었다. 모용희의 행동은 황후를 위하여 왕조를 팔아 버릴 수도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러하니 그를 내 쫓으려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모용희가 황후 부씨의 장례행렬을 보내려고 궁궐을 나오게 되자 황제가 왕성을 떠난 기회를 이용하여 풍발 등이 그 무리들과 함께 군사를 일으켰다. 그리고 모용운(慕容雲)을 추대하였고 그가 천왕(天王)에 즉위하였다. 후연에 황제가 바뀐 것이다. 그런데 사실 모용운은 고구려 사람이었는데 후연으로 들어와서 모용씨의 성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모용희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용발이었다. 이들은 모용희에게 얼굴만 내밀면 반란군을 쳐부수겠다고 하였지만 겁이 난 모용희는 도랑 밑에 숨어서 오래 되어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모용발은 일단 왕성(王城)을 다시 빼앗고 그때까지만 모용희가 나타나기만 하면 모용희가 다시 황제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자 모용발은 성에 올라가서 풍발 등이 거느린 군대를 향하여 거짓말을 했다. 지금 모용희가 성 아래 와 있으니 무기를 버리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군사들은 모용희가 이미 와 있고, 또 그를 지지하는 군대가 뒤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자 겁이 났다. 그래서 무기를 내 던졌다.
그러나 얼마동안의 시간이 흘러도 겁쟁이 모용희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고, 모용발의 군사를 후원하는 군대도 뒤를 이어주지 못하였다. 모용발이 혼자서 모용희를 살려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모용발의 군대는 결국 무너졌고 그도 사람들에게 살해 되었다.
한번 얼굴만 내 밀었어도 많은 사람이 도왔겠지만 끝까지 숨어 있던 모용희도 그를 돕던 모용발이 죽자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모용희는 일반 백성들이 입는 미복(微服)으로 갈아입고 숲에 숨어 있었지만 그것으로 될 일은 아니었다. 결국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붙잡혀서 모용운에게 보내졌다. 물론 모용운은 원래의 성인 고(高)씨로 성을 회복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모용운은 모용희를 데려다 놓고 그의 죄상을 열거하고 그를 죽였다. 자기 처를 끔찍이 아낀 것인지, 아니면 바보인지 분간이 안가지만 이성이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요즈음도 사랑지상주의를 부르짖는 젊은이들이 꽤 많다. 자기 처를 끔찍이 아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거기에도 최소한의 이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