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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못난 지휘자와 충성스런 부하


위진 남북조 시대의 남쪽에 있는 동진(東晉)의 이야기를 해 보자. 사마씨(司馬氏)가 세운 진(晉)나라는 오호(五胡)의 남하로 남쪽으로 쫓겨 내려 와 동진(東晉)이 되었다. 그런데 나약한 황제 안제 사마덕종은 그저 궁궐만 지키고 있었고, 군사력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횡행하였다.
황실에서 권력을 농단하는 사람은 안제 사마덕종의 삼촌인 회계왕 사마도자(司馬道子)였는데, 술을 워낙 좋아 할 뿐만 아니라 왕국보(王國寶) 같은 총신을 임용하여 전횡하였다. 그의 정치 아래서는 어떤 이유로 권력을 빼앗길지 모른다고 생각한 은중감(殷仲堪)은 환현(桓玄과 양전기(楊佺期)와 맹약을 맺었다. 그런데 일단 맹약을 맺어 놓고 보니 셋이서 사마도자를 제거한다고 하여도 그가 제거된 다음에 환현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양전기와 혼인관계를 맺어서 자기를 도와줄 세력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환현의 입장에서 본다면 은중감이 배반한 셈인 것이다.
이를 지켜 본 환현이 이러다가는 은중감에게 멸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술꾼 사마도자 대신 실제로 권력을 잡고 있는 그의 아들인 사마원현(司馬元顯)에게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을 좀 더 넓혀달라고 부탁하였다. 힘이 있어야 은중감 등에게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한편 권력자 사마원현의 입장에서는 군사력을 가진 대신들이 항상 위험스럽다고 생각하여 이들을 반목하게 하여 그 군사력을 약화시키고자 하였는데, 환현의 이 부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이를 실행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형주(荊州)에 있는 네 군(郡)의 군사를 지휘감독하게 하여 형주자사인 은중감과 싸우게 만들었다. 환현이 자기가 맡은 직책을 수행하기 위하여 은중감이 다스리는 형주 지역으로 군사를 이끌고 간다면 결과적으로 두 군사력을 가진 대신이 싸우게 되는 것이다.  사마원현의 음흉한 정치적 조치에 두 사람이 빠진 것이다.
어쨌거나 은중감은 환현이 그가 다스리는 형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하였다. 이때에 은중감과 혼인관계를 맺은 양전기가 은중감에게 힘을 합하여 환현을 먼저 치자고 하였다. 그랬더니 은중감은 다시 환현을 치고 난 다음에 양전기를 감당할 수 없을까 또 걱정하여 양전기의 제의를 미적거리면서 환현을 치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본 은중감의 밑에서 참군(參軍)노릇을 하고 있는 나기생(羅企生)은 결국 자기가 모시는 은중감이 실패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판단하였다. 이렇게 결단력 없는 사람을 모시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자기가 모시는 은중감의 실패와 함께 자기도 죽을 것을 예상하였다. 그렇다고 의리로 보아 그를 떠날 수도 없었다.
결국 환현과의 싸움에서 진 은중감은 달아나게 되었다. 그의 우유부단한 그의 조치 때문에 달아나는 그를 따라 가는 것은 그와 함께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 그의 밑에 있던 관원들은 한사람도 그를 따르지 않았다. 다만 나기생만이 그를 좇았다.
가는 도중에 나기생은 그의 노모가 있는 집 앞을 지나갔다. 이때 그의 동생 나준생도 이 사정을 아는지라 노모 핑계를 대면서 노모를 버리고 어디로 가느냐고 하면서 형 나기생을 은중감을 좇지 못하도록 붙잡았다. 결국 은중감은 나기준이 그 형 나기생을 놓아 주지 않을 것을 알고 말에 채찍질을 하여 떠났다.
동생 때문에 남게 된 나기생은 대신 은중감의 집안일을 관리하는데, 환현이 형주에 입성하였다. 환현은 나기생이 평소에 후덕한 사람이라 죽이면 비난을 받을 까하여 자기에게 사죄만 하면 살려 주겠다고 통보하였다. 그러나 ‘내가 모시는 사람이 실패한 것을 구하지 못했는데, 무엇을 사죄하란 말인가?’ 하고 결국 죽었다. 은중감은 우유부단하여 실패 했지만 그 부하 나기생만은 그에 대한 충성심을 끝까지 지킨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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