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164 article Join Login
 
<제109화> 불길한 날을 길일로 바꾼 탁발규

사람들은 점치기를 좋아한다. 특히 큰일을 앞두고는 장차 벌어질 일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알아보고 싶은 생각을 하는 수가 많다. 그래서 은(殷)나라 시대에는 국가의 대사를 결정할 때에 점치는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을 정인(貞人)이라고 하여 높은 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전통 때문인지 중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큰일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점을 쳐 보는 일이 있었다는 기록이 눈에 많이 띈다.
전진(前秦)의 부견이 비수의 전투에서 실패한 이후 북조(北朝)는 여러 나라로 나뉘었다. 그 가운데 모용씨가 세운 후연(後燕)과 요씨(姚氏)가 세운 후진(後秦)이 강하였고, 남연(南燕), 서진(西秦), 후량(後凉), 남량(南涼), 북량(北涼)과 북위(北魏)가 있었다. 그런데 이 여러 나라를 다시 재통일한 나라가 바로 탁발(拓拔)씨가 세운 북위(北魏)인데 그 왕 탁발규에 관한 이야기이다.
북위와 후연 사이에는 중산(中山)이 있었다. 중산은 여러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어서 때로는 독립 정권을 만들어 중산국이 되기도 하고 혹은 힘이 없으면 이웃 나라에 항복하기도 한 지역이었다. 삼국시대의 유비가 바로 이 중산정왕의 후예라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바로 그 중산국이다. 이 중산에 동진 안제 융안 원년(397년)에 기근이 심하게 들어서 약해지자 후연의 황제인 모용린(慕容麟)이 2만여 명을 인솔하고 나가서 중산의 신시(新市, 하북성 신낙시)를 점거하였다. 여러 나라가 각축하고 있던 시대에 재빠르게 영토를 확장하려는 것이었다.
중산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던 북위의 입장에서는 후연의 세력이 확장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북위의 황제 탁발규가 군사를 내어 그들을 공격하였다.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날이 마침 그믐날이면서 간지(干支)로는 갑자일이었다. 이러한 날은 보통 불길한 날로 생각하여 군사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이 업무를 당당하는 태사령(太史令) 조숭(鼂崇)이 말하였다. “상서롭지 못합니다. 옛날 은(殷) 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紂)가 갑자일로 인하여 망하였고, 그래서 이날을 질일(疾日)이라고 말하였는데, 전쟁에 참가하는 군사들이 이것을 꺼리고 있습니다.”질일이란 나쁜 날 즉 불길한 날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북위의 탁발규가 말하였다. “주(紂)가 갑자일에 멸망했지만, 은나라를 쳐부순 주나라 무왕은 갑자일에 일어나지 않았소?”어떤 사람에게 불길한 날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길일이 될 것은 분명한 터였기에 한 말이다. 갑자일은 패망한 은나라의 주(紂)임금에게는 불길한 날임에 틀림없으나 이 전쟁에서 승리한 주나라 무왕에게게 그 날이 바로 길일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조숭이 대답하지 못했다. 한 쪽이 작으면 한쪽이 큰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미리 불안에 싸여 용기를 잃고 과감하지 못하며 미적미적 한다. 사실 분명한 계획과 정확한 사리 판단을 하여 행동을 결정한다면 실패할 일이 적건만 자기 자신의 장단점과 상대방의 허실을 파악하는데 소홀하면서 운명이나 운수에 기대 보려고 한다. 약한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하여간 탁발규가 공격하자 결국에 3일 뒤에 모용린이 퇴각하여 고수(泒水, 사하)에서 방어하였다. 다시 일주일이 지난 뒤에 탁발규가 모용린과 더불어 의대(義臺, 신락시 서남쪽)에서 싸워서 그들을 대파하였고, 결국 후연의 공경(公卿)·상서·장리(將吏)·사졸(士卒) 가운데 북위에 항복한 사람이 2만여 명이었다. 또 연의 새수(璽綬)·도서(圖書)·부고(府庫)의 진귀한 보물을 1만 점을 획득하여 여러 신하들과 장수와 군사들에게 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북위의 탁발규가 크게 승리하였고, 북조를 통일할 기초를 세우게 된 것이다.
사실 불길한 날이란 없다. 스스로 불길한 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길한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가 바뀔 적에는 일년의 운수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지만 스스로 조심하고 철저히 준비하면 불길한 일이 있을 까닭이 없다. 불길한 날을 길일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Prev
  <제110화> 성공한 탁발규의 사과

권중달
Next
  <제108화> 귀인에게 죽은 동진의 황제

권중달
List


Copyright 1999-2026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