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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미래를 준비한 북위(北魏)의 탁발규

전진왕 부견이 동진을 공격하다 실패한 다음에 그가 통일하였던 북조에는 여러 종족들이 우후죽순처럼 각기 나라를 세웠다. 전진에서 독립한 선비족(鮮卑族) 모용수(慕容垂)는 후연(後燕)을 세웠고, 강족(羌族) 요장(姚萇)은 후진(後秦)을 세웠다. 그뿐이 아니었다. 또 다른 선비족인 걸복국인(乞伏國仁)은 서진(西秦)을 세웠고, 부견과 같은 저족(氐族) 여광(呂光)은 후량(後凉)을 세웠으며 또 다른 서비족인 모용홍(慕容泓)은 서연(西燕)을 세웠다.
이때에 이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하였지만 또 다른 선비족인 탁발규(拓跋珪)가 북위(北魏)를 세운다. 그러니까 부견인 동진정벌을 실패한 뒤에 몇 년 사이에 북조(北朝)에는 7개의 나라가 존재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선비족이 세운 나라는 후연과 서진, 서연, 북위까지 네 개의 나라나 되었다. 같은 선비족도 지파별로 나라를 세운 것이다.
그런데 후에 다시 북조를 통일하는 나라가 탁발규가 세운 북위이다. 그러나 탁발규가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에는 이미 망한 연(燕)을 부흥시킨 모용수의 후연이 가장 강하였다. 그러나 새로 위(魏, 북위)를 세운 탁발규는 늦게 출발하였지만 후연을 도모하여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었지만 그러나 겉으로는 후연과 친선관계를 유지하여야 했다.
위왕(魏王) 탁발규는 후연의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자기의 4촌 동생인 탁발의(拓拔儀)에게 후연에 사신(使臣)으로 가라고 하였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명을 받은 탁발의는 사신이 되어 후연의 중산(中山) 땅에 이르렀다.
힘이 강한 후연의 모용수는 위왕 탁발규가 직접오지 않은 것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탁발의에게 따져서 물었다. ‘어찌하여 위왕이 손수 오지 않았느냐?’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오만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탁발의는 과거의 일을 꺼내어 후연과 북위가 상하관계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당당하게 말하였다.
‘먼저 돌아가신 왕께서는 연과 더불어 나란히 진(晉)왕실을 섬기면서 대대로 형제로 지냈으니 신(臣)이 지금 사신으로 온 것은 이치로 보아서 아직 실수한 것은 아닙니다.’ 두 나라는 모두 선비족이 세운 나라인데, 그들의 조상인 탁발역미(拓拔力微)와 후연의 선조인 모용섭귀(慕容涉歸)가 함께 서진(西晉)지역으로 내려와서 서진에서 벼슬한 일을 가지고 대답하였다.
모용수는 과거는 그러했지만 지금은 국력이 달라졌으니 같은 처지가 아니라고 말하였지만 탁발의는 대답하였다. ‘연(燕)이 만약에 덕성(德性)과 예의를 닦지 않고 군대의 위세(威勢)로 스스로 강성해지고자 한다면 이는 바로 장수가 할 일일 뿐이니 신에게 알게 할 바가 아닙니다.’ 군사력으로 비교한다면 싸워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니 여기 앉아서 말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후연을 방문하고 온 탁발의는 후연의 상황을 분석하였다. 현제 연의 주군인 모용수는 늙어서 쇠약하다. 그의 동생인 범양왕(范陽王) 모용덕(慕容德)은 모용수가 죽은 다음에는 그의 조카인 현재 태자에게 신하노릇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장차 후연에는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때를 대비하자고 하였다.
과거와 현재를 알면 미래가 보이는 법이다. 탁발의는 단 한번 후연을 방문하고서 후연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과 북위로써 이에 대비할 일을 꿰뚫어 알았다. 10년은 고사하고 5년의 앞일조차 관심 없이 당장의 코앞에 일만을 생각하는 요즈음 사람들이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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