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남북조 시기에 전진왕(前秦王) 부견(苻堅)이 북조(北朝)를 통일한 후에 중원천하를 통일하려고 남쪽에 있는 동진(東晉)을 공격하다가 비수에서 참패를 당했다. 그 여파로 10여 년 전에 망명하여 부견에게 대우를 받던 연(燕)나라 출신의 모용수(慕容垂)가 전진에서 독립하여 부견에게 멸망한 연을 재건하였다. 이것이 후연이다.
하여간 모용수가 연을 재건하여 전진의 도읍인 업(鄴)을 함락 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를 공격하고 있었지만 그리 쉽게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그러자 모용수는 방향을 바꾸어 북쪽에 있는 기주(冀州, 하북성 중남부)로 가려고 하였다. 이것을 보고 주위에서는 후연에는 힘이 없는 것으로 알고 후연을 떠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라를 세운 초기에 위기를 만난 것이다.
그러자 연왕 모용수는 그를 돕는 후연의 표기대장군 모용농에게 도읍 업으로 오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용농의 휘하에서는 종사중랑 휴수(眭邃)가 심부름을 갔다가 제때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모용씨의 연나라 앞날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 이때에 모용농의 부대에서는 휴수를 처리하는 것을 가지고 논란이 있었다. 참모들 가운데는 당연히 휴수를 토벌하여 죽여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 시련을 맞고 있는데, 어떻게 명령을 어길 수가 있느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당연히 전장(戰場)에서 명령을 어긴 것을 그대로 둔다면 군기가 문란하여 질서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장(首長)인 모용농의 생각은 달랐다. 종사중랑을 처벌하는 것은 그 한 사람을 잃는 것일 뿐 전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명령을 수행하지 않은 휴수에게 도리어 태수라는 높은 벼슬을 주었다. 종사중랑이었던 사람인데 명령을 어기자 더 높은 태수로 삼은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규칙을 어겼다고 제거하려고 한다면 자기의 세력은 점점 더 작아 질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우선은 내게서 떨어져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용농은 휴수뿐만 아니라 휴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골라서 태수와 태수 바로 밑에서 업무를 총괄하는 장사(長史)를 시켰는데 그런 사람이 20여명이나 되었다. 수장의 밑에 있는 사람이란 겉으로는 수장을 생각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휴수처럼 자기의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것을 모용농을 간파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 참모 모두에게 충성과 의리를 지키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 요구가 강하면 그것은 그들을 떠나게 만드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모용농은 자기에게 남아 있으면 이익이 된다는 것을 그들에게 미리 알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휴수를 토벌하자고 건의한 사람들을 나무랬다. “그대의 소견이 특별히 그릇되었소. 지금 어찌하여 서로 잡아먹으려고 다툼을 하는가?”휴수를 토벌하자고 한 사람들은 겉으로는 수장을 위하고 도덕과 법률을 들먹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헐뜯고 경쟁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것은 적을 앞에 두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모용농은 말하였다. “내가 북쪽으로 돌아갈 때에 휴수 등은 도로 왼편에서 스스로 나를 영접할 것이니 그대들은 다만 그것을 보기만 하시오.”휴수를 자신 있게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수장과 참모가 갖는 생각의 차이이다. 한참 선거로 온 나라가 들 떠 있다. 그리고 각 후보자 진영 별로 참모들의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움직인다.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인데 만약에 수장이 이들에게 충성심과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고 잘라 내고 하면 승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후에나 해야 한다. 한 참 싸움판에서는 떡 하나 더 주는 수장이 이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누가 이길지가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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