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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전진 부견의 등장

중원을 차지했던 서진(西晉)에 오호(五胡)에게 쫓겨서 남쪽으로 내려가서 진(晉)을 재건하여 이를 역사에서는 동진(東晉)이라고 부른다. 진(晉)이 남쪽으로 내려간 자리에는 성(成), 전조(前趙), 후조(後趙), 전량(前涼) 같은 나라들이 세워지는 가운데, 옛날 전국시대에 중원을 통일하였던 진(秦)나라 지역에서 다시 부건(苻健)이 진(秦)을 세우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전진(前秦)이라고 한다.
부건은 오호 가운데 한 족속인 저족(氐族)으로 대대로 중원의 서북쪽에 살던 족속이다. 부건이 전진을 세웠을 때에는 동쪽에 전연(前燕)이 있었고, 후조와 전량이 서부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서 중원의 지역은 남쪽의 동진 말고도 네 나라가 각축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전진이 건국하여 25년이 지나는 사이에 전진의 천왕 부견(苻堅)이 이들 여러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켜서 북조를 재통일한다.
이 전진왕 부견은 승려 순도(順道)를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에 보내면서 불경과 불상을 보내온 것이 역사적인 일로 우리들에게 기억되는 인물이다. 부견이 불교를 고구려에 전한 지 12년이 지나서 남쪽에 있는 동진에서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마라난타(滅難陀)를 보내 왔다.
이러한 부견도 순탄하게 천왕(天王)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원래 전진을 세운 부건의 조카였다. 따라서 그에게 황제의 자리가 올 수 없었다. 그래서 부건이 죽은 다음에는 그의 4촌인 부생(苻生)이 황제의 자리를 이어 받았다. 그런데 부생은 한쪽 눈이 멀었다는 핸디캡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핸디캡 때문에 혹시 자기를 비웃지나 않을까 항상 신경을 썼다.
그래서 부생 앞에서는 말하는 내용이 무엇이든지간에 그 말 속에 ‘나머지, 모자람, 치우침, 한 짝, 적음, 없음, 갖추지 못함’이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냈다가는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사람을 죽였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폐하께서 다스리니 세상 사람들이 태평가를 부릅니다.’라고 하였더니, ‘너는 나에게 아부하는구나!’라고 하면서 목을 베었다. 또 어떤 사람이 ‘폐하께서 내리는 형벌은 조금 지나치십니다.’라고 하였더니 ‘너는 나를 비방하는구나!’라고 하면서 목을 베었다.
그래서 부생 밑에 있는 여러 신하들은 하루를 넘기는 것이 마치 10년을 넘기는 것 같은 느꼈고, 부생은 옛날 전진을 세우는데 공로를 세운 사람과 부씨 집안의 친척들도 목을 베이는 일이 많아졌다.
이러한 시대에 부견은 동해왕(東海王)으로 있었다. 본디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던 부견에게 그 밑에 있던 부하들이 유세하였다. 이러한 상태로 가다가는 다른 종족이 부생을 내쫓고 황제가 될 것이고 그러면 부씨 조상에게 제사를 드릴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부씨 조상을 위해서도 계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고, 드디어 왕맹(王猛)을 얻게 되었다. 왕맹은 원래 동진지역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동진에서는 그를 알보지 못하였는데, 전진의 부견이 그를 초청했던 것이다. 국적과 종족의 한계를 뛰어 넘은 조치였다. 부견이 왕맹을 만나보고는 마치 유비가 제갈량을 만난 것과 같이 기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드디어 부견은 쿠데타를 일으켜서 300명을 인솔하고 전진하니 황제 부생을 숙위하던 장사들이 모두 무기를 버리고 부견에게 귀부하였다. 술 취해서 자고 있다가 군사들이 다가오자 부생은 오히려 자기의 숙위병으로 알고 왜 절을 하지 않느냐고 호통을 치다가 잡혔다. 어리석은 황제의 최후였다.
쿠데타에 성공한 부견은 자기의 서형(庶兄)인 부법(苻法)에게 황제의 자리를 양보하였다. 그러나 적손(嫡孫)이고 공로도 많은 부견이 황제가 되는 것이 옳다는 여론에 따라 부견은 정치의 책임을 맡기로 하였다. 다만 황제라는 용어가 부담스러웠는지 천왕(天王)으로 한다고 하며, 천왕의 자리에 올랐다. 어느 시대든 자기에게 다가 온 복을 걷어차는 사람도 있고, 복을 불러 오는 사람도 있는데, 부견과 부생이 바로 그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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