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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진(晉)이냐? 개인의 이익이냐?

서진(西晉)의 두 황제가 후조(後趙)에 잡혀가서 서진이 멸망하자 그 세력이 남하하여 동진(東晉)을 세우고 35년쯤 되는 때였다. 동진에서 군사세력을 갖춘 환온(桓溫)이 모처럼만에 잃어버린 장안을 탈환하기 위하여 북벌을 감행했다.
이때는 서진(西晉)을 멸망시켰던 전조의 뒤를 이은 후조(後趙)도 멸망하고, 새로이 등장한 부건(苻健)이 전진(前秦)을 세운지 불과 4년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동진으로서는 절호의 기회를 만난 셈이었다. 그 위에 후진의 재상을 지낸 요익중(姚弋仲)은 사신을 동진에 파견하여 항복을 받아 달라고 까지 요청하였다.
이때에 환온은 북벌(北伐)하게 해 달라고 여러 번 요청하였으나, 번번이 거절되었다. 오히려 당시에 권력을 잡았던 은호(殷浩)가 북벌하러 나섰다가 크게 실패하고 돌아왔다. 이러한 기회를 틈타서 환온은 은호가 북벌에 실패한 것을 꼬투리 삼아 그를 실각시켜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전진(前秦)을 정벌하러 나섰다.
환온의 군대는 전진의 군대를 패배시키고 오랜 만에 잃어버렸던 장안(長安)의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장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남전(藍田)에서의 어려운 싸움 끝에 전진의 군대를 패배시키고 승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파상(灞上)에 이르렀다. 이제 파수(灞水)만 건너면 장안을 수복하게 된 것이다.
장안 주변에 있는 군현(郡縣) 사람들은 모두 환온에게 와서 항복하였다. 또 백성들은 다투어 술과 고기를 싸들고 환온의 군사들에게 와서 환영하였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오늘 계획하지도 않았는데, 다시 관군(官軍)의 모습을 보게 되었구나!’라고 말하면서 감격하였다.
이들이 관군이라고 부른 군대는 동진 환온의 군대였다. 그동안 호족(胡族)군대만 보아왔었기 때문에 한족(漢族) 왕조인 동진의 군대를 보자 옛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옛날 서진시절처럼 한족(漢族) 왕조가 다시 장안을 지배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북해에 사는 왕맹(王猛)이라는 사람이 환온을 찾아갔다. 왕맹은 젊어서 공부하기를 좋아하였고, 또 권력자이건 아니건 세상의 형식에는 걸림 없이 다만 큰 뜻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한 왕맹은 환온이 함곡관을 넘어서 장안에 거의 가까웠다는 말을 듣고 갈포(褐袍, 솜 옷) 옷을 입고 환온을 찾은 것이다.
왕맹은 환온에게 와서 말을 하면서도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스멀거리는 이를 잡으며 이야기를 했다. 환온은 자기가 여기까지 왔는데, 왜 호걸(豪傑)들이 찾아오지 않는지를 왕맹에게 물었다. 그러자 왕맹은 간단히 대답했다. ‘장안이 지척에 있는데, 파수를 건너지 않으니, 그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정말로 동진을 위하여 온 것인지 권력을 잡으려는 다른 방법의 하나로 군사를 끌고 온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환온이 왕맹을 채용하려고 했지만 그는 환온이 동진을 찬탈(簒奪)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떠났다. 그 후에 왕맹은 전진의 황제 부견(苻堅)을 도왔고, 부견이 북방을 통일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
환온은 인재를 보고 자기 개인의 이해관계를 따졌지 한족(漢族) 왕조인 진(晉)이 잃은 땅을 수복하는데 뜻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도 잃고 또 자기의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였다. 환온 같은 우를 범하는 사람은 오늘날에도 널려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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