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 땅은 한족(漢族)만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漢)이 망하면서 이른 바 북방지역에 살던 오호(五胡)가 중원지역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한족들은 남쪽으로 쫓겨 가서 남조(南朝)를 이루었다.
이렇듯 한왕조가 망하니 세상은 혼란해졌고, 이런 혼란을 피하여 산속으로 들어가서 노장(老莊)사상을 공부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러한 분위기와 발마추어 역시 세속을 벗어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불교도 번성하였다.
사실 불교는 이미 전한 말에 들어왔고, 후한대에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이때에는 유교를 이념으로 삼고 있어서 그다지 번성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위진시대에 오면 서역(西域)으로부터 많은 승려들이 중원으로 들어왔고, 불경도 한문으로 번역되었으며, 승려는 최고의 지식인으로 대우받았다. 그래서 남조에서는 재상으로 승려의 찻물을 끓여 대접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승려가 최고의 지식인으로 대우 받게 되자 황제들은 승려에게 자문을 받고 정치를 하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후조(後趙)를 세운 석륵(石勒)은 지금 인도인 천축(天竺)에서 온 승려인 불도징(佛圖澄)을 알게 되었고, 그의 자문을 받아 정치를 하였다. 그런데 불도징이 앞으로 일어날 일의 성패(成敗)를 미리 맞히는 일이 많아 황제가 된 석륵은 불도징을 극진히 공경하였다.
석륵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석호도 역시 불도징을 삼가 섬겨서 그에게 비단 옷을 입게 하고, 화려한 연(輦)을 타게도 하였다. 조회가 열리는 날이면 태자와 여러 공작(公爵)들이 그를 부축하여 계단을 오르게 하였으며, 반드시 ‘대화상(大和尙)’이라고 존칭을 사용하여 불렀다.
온 나라가 모두 불도징을 공경하여 그가 있는 곳이면 그쪽으로 침을 뱉지도 않았다. 이렇게 승려가 대우를 받자 사람들은 다투어 절을 지었다. 머리를 깎고 출가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사회적으로 승려를 대우하는 풍조가 일자 승려에게는 부역까지 면제해 주며 우대했다.
이쯤 되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통스런 부역을 담당하기 싫은 사람 가운데 약삭빠르게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는 사람이 생겼고, 또 그 숫자도 많아졌다. 산속에 들어가서 수행을 해기 위하여 삭발하고 출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역을 피하려고 삭발을 하였다. 말하자면 가짜 승려가 늘어난 것이다.
승려를 우대하는 정책에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황제인 석호도 이를 우려하였다. 대신들 가운데서도 이를 비판하고 나라를 위하여 걱정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대로 둘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드디어 명령하였다. ‘앞으로 출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허락을 받으라.’ 드디어 마음대로 출가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석호는 스스로 불교를 좋아하였지만 머리만 깎은 가짜 승려를 배척한 것이다.
어느 시대건 국가나 사회에 기여하는 부류에 대하여서는 일정한 정도 대우를 하게 된다. 그것은 옳은 정책이다. 기여한 만큼 대우해 주는 것은 그 사회의 예의이다. 문제는 어느 부류에나 국가나 사회가 대우해 준다는 이익만을 노리는 가짜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 너무 가짜가 많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을 담당하기에 교수를 대우해 주었더니 정치를 하러 나선다. 정치를 하라고 국회의원을 대우해 주었더니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다. 성직자여서 많은 사람이 대우를 해 주었더니, 엉뚱하게 돈벌이를 하거나, 정치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자기 할 일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이들이 모두 이시대의 가짜들이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 지금 가짜를 걸러내는 것은 예전처럼 황제가 있던 시대가 아니고, 국민이 주인인 세상이니 민초들이 해야 한다. 교회와 절에서는 신도들이 가짜 성직자를 걸러내야 한다. 교육계에서는 학생과 감독기관이 가짜를 걸러내야 한다. 그리고 가짜 정치인은 투표로 유권자가 걸러내야 한다. 가짜가 생겨나는 것은 걸러낼 힘을 가진 이들의 잘못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