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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주민들에게 환영받은 도간

오호(五胡)에게 중원지역은 내주고 남쪽에 진(晉)을 부흥시킨 동진(東晋)은 여전히 어려운 세월을 보내야 했다. 걸핏하면 군사를 가진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토벌하느라고 또 힘을 쏟아야 했다.
그런데, 동진의 명제(明帝) 사마소(司馬紹)가 등극하고 3년 되는 해<325년> 5월에 도간(陶侃)을 정서(征西)대장군·도독형상옹양사주제군사(都督荊·湘·雍·梁四州諸軍事)·형주자사로 삼으니 형주의 남자나 여자가 서로 경하하였다. 도간은 정서대장군이 되어 실제적으로는 형주와 상주, 옹주,양주 등 네 주(州)의 군사를 지휘하게 하고, 형주의 행정책임은 맡게 한 것인데,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한 것이다.
자기 지역을 다스리는 관리가 새로 임명되었는데, 백성들이 이렇게 환영하는 일은 그리 흔치 않은 시절이었다. 보통 관리란 수탈하는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오든지 소 닭 쳐다보듯 하였지만 이 경우만은 아주 특별한 것이다. 그도 그럴 이유가 있었다.
우선 도간은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며 공손하고 부지런하여 온종일 다리를 오므리고 꼿꼿하게 앉아서 대장군부의 여러 가지 일을 살피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정리하니 조금도 한가한 틈이 없었다. 또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위대하신 우(禹)임금은 성인이신데도 촌음(寸陰)을 아꼈으니, 보통사람들은 응당 분초를 아껴야 할 것이오.”
그래서 혹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 가운데 농담을 하며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세상에서 통달하였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러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들이 사용하던 술잔과 도박기구를 가져오게 하여 이것들을 모두 강물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장교와 관리들을 바로 회초리를 치면서 말하였다. “군자는 마땅히 그의 위엄 있는 모습을 올바로 하여야 하는데, 어찌 머리를 산발하고 맨발로 있으면서 스스로 넓게 통달하였다고 말한단 말이냐?”
또 먹을 것을 바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이 어디서 났는지를 묻고 만약에 힘들여서 얻은 것이라면 비록 미미할지라도 반드시 즐거워하면서 위로하며 그 세 배를 내려주었다. 만약에 이치에 맞지 않게 얻은 것이라면 절실하고 엄하게 욕하며 그 먹을 것을 돌려보냈다.
한번은 밖에 나가서 놀다가 어떤 사람이 아직 덜 익은 벼를 갖고 있는 것을 보고 도간이 물었다.
“이것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그 사람이 말하였다. “길을 지나오다가 보여서 그냥 그것을 뜯었습니다.”도간이 크게 화가 나서 말하였다. “너는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놀이 삼아 다른 사람의 벼를 도적질하는 것이냐?”그를 잡아서 채찍으로 매질하였다. 이렇게 되자 백성들은 농사짓는 일에 부지런하였고, 집집마다 사람들이 풍족하게 되었다.
또 한 번은 배를 만드는데, 다듬고 남아서 떨어지는 나무 조각과 대나무 쪼가리가 있자 도간이 모두 이것을 기록하여 관리하게 하니 사람들은 모두 그 까닭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서 정월 모임이 있었는데, 많은 눈이 왔다가 녹는 바람에 청사 앞이 질퍽하게 되자 그 나무부스러기를 땅에 깔게 하였다. 다시 20년 후에 동진의 장군 환온(桓溫)이 촉(蜀)을 정벌하게 되자, 도간이 저장해놓은 대나무 쪼가리로 대나무 못을 만들어 배를 만드는데 사용하게 하였다.
동진이 혼란스럽고, 자기들끼리 다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그래도 100여년을 버틸 수 있었던 데는 도간 같이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다 들 떠 있다고 하여도 중심을 잡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법이다. 이러한 사람들에 의하여 나라와 사회가 지탱되는데, 지금도 이러한 사람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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