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속박을 싫어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속박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자꾸 세상일이 거치적거린다 생각한다. 그러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귀찮고 거치적거리며 때로는 짜증이 난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은 안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개인에게도 하기 싫어도 안할 수 없는 일이 있지만 하나의 집안과 사회와 국가를 이루며 살아가면서도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예컨대 세금은 좀 덜 내고 싶은 생각이 있고, 교통규칙은 좀 안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지켜야 한다. 그것을 안 지키면 국가와 사회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서를 지키게 하는 것 가운데 법률이 있다. 안 지키면 그에 따른 벌을 주자는 뜻이다. 그런데 법을 어겨서 벌을 받기 이전에 일상생활 속에서 잘 지킨다면 법이 질서를 잡기 전에 질서가 잡히도록 생각해 낸 것이 있다. 그것이 명교(名敎)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명칭이 붙어 있는데 그것을 지키자는 것이다. 그래서 군군신신(君君臣臣)부부자자(父父子子)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질서에는 반드시 상하(上下)와 귀천(貴賤), 남녀(男女) 등 구별이 있어서 그에 따른 행동수칙이 있고, 그러면 사회는 질서정연하게 돌아간다.
그러나 이것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앞서 말한 대로 거치적거림이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나라에서 이를 장려하고 설득하고 교육시키면 이것저것 이해하게 되니까 명교를 지키게 된다. 그러나 나라와 사회가 이를 교육하거나 실천을 강조하는 제도적 장치가 약해지면 그만 이 귀찮은 행동수칙을 버리고 ‘자유’라는 말을 외치고 이 규제를 깨뜨리는 것이 마치 무슨 영웅이나 된 듯 행동한다. 그리고 철없는 사람은 이를 멋지게 보고 따라하여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혼란에 빠진다.
이러한 시대가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있었다. 한(漢)나라 때에 유교(儒敎)를 국교로 하여 이를 교육하여 군신·부자·부부·붕우 간에 지켜야 할 행동양식 등을 정하고 이를 장려하여 귀찮지만 누구나 다 이를 지키려 하였다. 그런데 한왕조가 무너지고 황건적이 나타났고, 강력한 왕권은 형성되지 않자 이 자유에 대한 열망이 나타났다. 국가의 통제력이 약해진 까닭이다. 그래서 고급스럽게 ‘초탈’을 세속적 얽어맴에서 벗어나려는 기풍이 불었다.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잘 못 받아들인 사람도 많게 된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남조 송(宋)의 황제 창오왕이다. 쫓겨나서 황제의 칭호도 받지 못했지만 하여간 어릴 때부터 제멋 대로였다. 태자 시절에도 황제가 될 공부는 하지 않고 옻칠한 장대에 올라가서 하루 종일 놀았다. 그의 생모인 진태비가 회초리를 들고 때리기도 했지만 고치질 못했다.
그러다가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는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돌아오고 저녁에 나가면 새벽에 돌아오는 기행(奇行)을 저질렀는데, 니승들만 사는 청원사에 몰래 들어가서 기르는 개를 훔쳐다가 삶아 먹지를 않나 낮에 나가 돌아다니다가 움직이는 것을 보기만 하면 개든 짐승이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죽이는 일도 있었다. 자기 스스로 ‘나는 자유롭게 산다.’고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평복을 입고 미행(微行)을 나가서 길에서 드러누워 자지를 않나 민간인과 시비가 붙어서 욕을 먹기라도 하면 또한 이것을 즐겁게 생각하는 일까지 있었다. 한번은 태후가 선물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태후를 죽인다고 사약을 끓이라고 한 일이 있다. 그런데 태후가 죽으면 곡을 해야 된다고 하니 그것이 귀찮아서 그만 두었다.
이러한 황제의 짓거리는 심한 것이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도덕적 질서를 거부한 위진남북조 시대의 분위기 탓이다. 그가 어릴 시절에 세상을 초탈하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하게 한 그 시대의 분위기를 어린 그가 배운 때문일 것이다. 이 고사를 보면서 자꾸 요즈음 생각이 난다. 서양에서 들어온 자유사상이 좋기는 한데 그에 따라 반드시 있어야할 절제력을 갖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니 그런 생각이 때로는 부모를 죽이고, 처자를 죽이며 남편을 죽이는 사람까지 나타나게 된 것은 아닐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