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 시대에 송(宋)의 명제(明帝) 유욱(劉彧)은 자기 조카 유자업(劉子業)을 쫓아내고 황제에 오른 사람이다. 유욱의 아버지 문제(文帝)가 죽은 후 황제에 오른 어린 유자업은 장성한 삼촌 유욱 등이 자기의 자리를 혹 빼앗을까 두려워서 삼촌들을 못살게 굴며 죽이려고 까지 하였다.
이러한 조카를 먼저 죽이고 황제에 올랐으니 여기까지는 사실 누가 잘하고 잘 못한 것을 구별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유욱의 입장에서는 자기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그도 어쩔 수 없이 조카를 내쫓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 오른 다음에도 쫓겨나 죽은 유자업의 형제들이 삼촌들이 부당하게 황제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하여 군사를 일으킨 일이 있으니 결국의 숙질(叔侄) 간의 권력싸움이었다.
하여간 그러고 나면 좀 편안하게 황제 노릇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세상일이란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황제인 명제 유욱도 병이 들었고 병석에 눕자 또 황제 자리 걱정이었다. 그를 도왔던 동생 유휴인이 성격이 괄괄하여 때로는 그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대로 두면 자기의 어린 아들을 내 치고 동생 유휴인이 황제 자리에 오를 것 같았다. 이처럼 불안해 지자 방법을 써서 그를 죽였다.
황제가 그 동생을 이렇듯 죽이자 다른 동생인 유휴인은 불안해하였다. 언제 형님인 황제가 어떤 조치를 하고 자기를 죽일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 유욱은 자기가 죽은 다음에 만약에 유휴인이 황제에 오르면 불이익을 볼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넌지시 계획을 짜게 하였다.
그러나 밖에서 본다면 명제가 동생 유휴인을 죽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황제와 동생 유휴인은 평소에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제 유욱이 죽으면 태자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유휴인이 뒤를 잇거나 적어도 권력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후에 유휴인에게 의탁하려고 마음먹었다.
명제 유욱의 병이 위독해지자 대부분의 관원들이 유휴인에게 이른 바 눈도장이라도 찍으려고 유휴인이 거처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혹 당직을 서기 때문에 유휴인에게 갈 수 없는 사람은 오히려 유휴인에게 눈도장을 못 찍은 것이 후에 화가 되지 않을까 벌벌 떨 지경이었다.
이 말이 앓아누운 황제 유욱에게 보고되었다. 이 보고를 들은 황제 유욱은 동생 유휴인에게 조서를 내려서 만나자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유휴인이 궁궐로 들어가려고 하였더니, 오늘 저녁은 상서하성(尙書下省)에서 머물러 숙박하고, 날이 밝으면 일찍 오도록 하라고 다시 말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날 밤에 사약을 싸가지고 가서 유휴인에게 먹게 하였다. 계획을 실천한 것이다.
권력을 둔 싸움이란 원래 그런 것이지만 동생을 죽이려고 이렇게 사람을 속여서 유인한 것이다. 사약을 받은 유휴인은 화가 났다. 형님 명제가 황제에 오르게 된 것은 자기가 도왔던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악담을 퍼 부었다. 과거에 5대 황제인 효무제 유준(劉駿)이 동생들을 죽이었는데, 그 후사가 없게 되었던 사실을 거론 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형제들을 죽이면서 황제가 되는 송(宋)나라가 오래 갈 수 없다고.
유휴인이 악담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명제 유욱이 죽은 다음에 그 아들 유욱(劉昱)이 황제에 오르긴 했지만 쫓겨났다. 이를 역사에서는 후폐제(後廢帝)라고 부르는데, 그 후 곧 나라는 곧 망하였다. 명제가 저지를 죄를 후손이 받은 것일까? 생각해 보면 황제의 자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조카를 죽이고 동생을 죽였을까? 그러한 자기는 천년만년 살 줄 알았단 말인가? 결국 집안 싸움하다가 나라를 망쳤다. 그리하여 역사가 심약은 유욱의 아버지 태조가 나라를 큰 뜻을 가졌지만 집안을 융성시키는 도는 부족하였다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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