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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명제와 그 문고리 권력

남북조시대 남조 송(宋)왕조에는 황제에 올랐다가 쫓겨난 사람이 둘이 있다. 그래서 역사에서는 먼저 쫓겨난 황제를 전폐제(前廢帝)라고 하고, 뒤에 쫓겨난 사람을 후폐제(後廢帝)라고 부른다. 전폐제가 쫓겨 난 일은 앞에서 이미 거론 한 바처럼 명제(明帝)가 조카를 쫓아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사건이다.
조카를 쫓아낸 명분이야, 전폐제가 인륜(人倫)에 어긋난 정치를 하고,  혼란을 부추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기가 대신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전에 잘 못한 것을 되돌아보고 제대로 정치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기대일터이다. 그러나 유욱(劉彧)의 아들도 명제가 죽은 뒤에 황제에 올랐다가 쫓겨났고 바로 후폐제이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비록 정치를 잘하겠다고 조카를 죽이고 황제에 오른 명제 유욱은 그럴 위인이 못되었다. 그저 황제 노릇을 하라니까 하는 것일 뿐이었고, 그 높은 자리를 자기 수준에서 즐기려고만 하였다. 그 수준이 얼마나 저속한지는 그가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며 거기에 참석한 여인들을 발가벗겨 놓고 즐겼다. 황후가 옆에 있다가 눈살을 찌푸리니 화가 나서 황후에게 안으로 들어가라고 호통을 치는 위인이었다.
그러하니 정치를 제대로 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그가 황제가 된 다음에 채용한 인물도 바로 그 수준을 벗어나질 못하였다. 그래서 그가 채용한 관리는 자기 주변에서 자잘한 일을 하는 사람 밖에 없었다. 이러한 소인(小人)들이 별안간 높은 자리에 오르자 그 권한은 크고 해야 할 일은 모르니 할 수 있는 일이란 황궁의 문고리를 잡고 관직을 팔고 돈을 거두는 일 밖에 할 줄 몰랐다.  
그 가운데 완전부(阮佃夫)라는 사람이 있었다. 완전부는 전폐제 시절에 하릴 없이 궁궐에 들어와서 잔심부름이나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그가 전폐제를 내 쫓는 일에 가담하였고, 명제를 황제로 세우는 일을 하고 나서 권력을 잡은 것이다. 그 덕택으로 승승장구하여 관직은 끝없이 올라갔다. 유격(游擊)장군이 되어서는 더욱 방자하고 전횡하는 일을 일삼았다. 그래서 당시에 그에게 순응하면 복을 받고, 그의 뜻을 거스르면 화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가 뇌물을 받는데, 예컨대 비단 200필이 안 되는 것을 바치는 사람은 명부에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의 집은 여러 왕자들의 집보다 화려했고, 그 집에 사는 기녀와 악공들의 복장은 궁궐에 있는 사람들의 복장보다 화려했다. 노복이라도 그와 결탁하면 아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관리가 되었으며 그의 수레를 끄는 사람은 황궁을 호위하는 금위군 가운데 숙위(宿衛)의 책임을 진 호분(虎賁)중랑장이었다. 그의 말을 끌던 마부도 원외랑(員外郞) 벼슬을 하였다.
그가 천거하는 사람이 적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한 재상이 이를 거부하려고 하였더니, 이 사람은 완전부가 천거한 사람이라고 하자 하는 수 없이 그래도 관직을 임명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러한 것이 바보 황제와 그 문고리 권력을 잡은 완전부의 안하무인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람에 의하여 움직이는 왕조가 오래 갈 수는 없는 법. 명제가 죽고 그 아들 유욱(劉昱)이 들어섰지만 질서가 없어진 왕조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바보 황제 유욱은 죽었고, 그 아들 유욱(劉昱)은 황제에 올랐다 쫓겨나서 후폐제가 되었고, 그와 함께 완전부도 잡혀 죽는다.
이렇게 보면 그들이 권력을 잡은 것인 긴 것 같지만 명제는 겨우 7년 황제 노릇을 했고, 완전부 역시 10여년 권력을 잡았을 뿐이다. 그런데 유욱의 아들은 폐위가 되었고, 완전부는 비명에 죽었다. 그들의 긴 인생에서 그 권력을 잡은 그 10년을 영광스러운 한 페이지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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