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시대에는 불교의 해탈사상이 들어와서 크게 유행하였다. 해탈이란 세상에서 모든 나를 얽어매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진정한 정신적 자유를 얻는 것을 말한다. 이 사상은 현대식으로 말하면 대자유였다.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사람은 얽어 매이기를 싫어하는 것은 똑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자유는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고 폭력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한 남조 송(宋)나라 시대에 황제에 올랐다가 쫓겨난 폐제(廢帝) 유자업의 누이 이야기다. 유자업에게는 유초옥(劉楚玉)이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산음(山陰)에 사는 부마도위(駙馬都尉) 하집(何戢)에게 출가하여서 산음공주라고 불리었다. 하씨 집안은 명망 있는 집안이었다. 유집의 아버지는 금자광록대부였고, 그의 할아버지는 사공을 지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유초옥은 이 자유를 자기 멋대로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친정인 황궁에 와 보니, 황제가 된 자기의 남동생 유자업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했다.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죽였고, 때리고 싶으면 때렸다. 그래서 한번은 궁궐에는 많은 여인들을 들여와서 멋대로 놀았다. 한번은 궁중에 있는 모든 여자들을 다 모아 놓았다. 그 가운데는 황제의 여동생들도 있었고, 숙모들도 있었다.
그래 놓고 해괴하게 궁중에 있는 남자들로 하여금 그녀들을 멋대로 욕을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명령을 듣지 않으면 죽이었다. 이것을 유자업은 자기의 대 자유라고 생각하였겠지만 자기 자신을 규제할 줄 모르는 자유는 방종이었던 것이다.
유초옥은 이러한 동생의 대자유(?)를 보고 자기를 돌아보면서 동생에게 말하였다. “첩(妾)과 폐하는 남자와 여자여서 비록 다르지만 함께 먼저 돌아가신 황제에게서 몸을 의탁하여 낳았습니다. 폐하께서는 육궁(六宮)에 있는 궁녀가 1만여 명을 헤아리나 첩은 오직 부마 한 명이니 일이 아주 공평하지 못합니다.”첩은 산음공주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고, 육궁이란 황제의 후궁들이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요컨대 유초옥은 남편 하나만 데리고 사는 것은 불공평하니 나도 동생처럼 많은 남편을 데리고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편으로는 남동생과 평등하게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는 것이었다.
요즈음에도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사람이 누구에게 얽어 매여 사는 것은 원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우를 받고자 한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의 자유도 지켜 줄줄 알아야 하고, 또 능력과 업적도 비등해야 되는데 이러한 조건은 맞추지 못하고서 계속하여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유초옥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말하는 것을 지켜보면 권력과 돈이 없어서 못할 뿐 권력과 돈만 있으면 유초옥처럼 행동할 사람이 한 둘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각설하고, 유촉옥의 이 요구를 들은 황제 유자업 또한 유초옥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래 누이 말이 맞소.’라고 하면서 즉각 궁중에 있는 젊은 남자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면수(面首) 30명을 뽑아서 누이에게 주었다. 면수란 얼굴과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사람을 말한다. 이들 면수 30명은 졸지에 산음공주의 성적 노리개가 된 셈이었다. 그런데 이 30명 가운데 들어 있던 이부랑(吏部郞) 저연(褚淵)이 여기서 빠져 나오려고 목숨을 걸고 저항하여 겨우 벗어났다.
좋은 생각과 행동도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부작용이 아주 크다. 요즈음 세태 속에는 서양의 자유와 평등을 잘 못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니지 하는 생각은 나의 노파심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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