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몰린다는 속언이 있다. 권력을 가진 재상의 일이라면 작고 크고 간에 명목을 가지고 찾아가서 눈도장을 찍든 교제를 하던 기회를 만들려는 사람들의 인심을 꼬집는 말일 터이다. 중국 위진 남북조시기에 하급관직으로 전첨(典籤)이라는 자리가 있었다. 전첨이란 부(府)나 주(州)의 자사가 심부름으로 문서의 수발하는 일을 맡은 낮은 자리이다. 사실 문서의 수발이라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며 그 문서에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단순한 심부름꾼으로 채우면 될 자이였다.
그런데 위진시대 남조 송(宋) 중엽에 오면서 사정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송의 황제는 여러 아들에게 지방을 진수하는 책임을 지워서 자사로 임명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 아마도 아들들에게 관직을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의 황제의 울타리 노릇을 하라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황제의 아들이라도 문제는 어느 정도 일을 할 만한 사람에게 이일을 맡겨야 하는데, 아들에게 관직으로 주고 싶은 생각에 어린 아들을 자사로 임명하여 지방에 내려 보내기 시작하였다.
그러하니 제대로 이들이 그 업무를 처리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보좌하는 인물을 뽑았고, 이들에게 전첨의 업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어린 자사를 돕는 사람이 하급관리가 맡는 전첨의 일을 맡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점차로 문서를 관리하는 전첨의 권한이 무거워졌다. 문서를 관리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문서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처리를 하면서 자사를 돕게 되니 일은 편리해졌지만 그 권력은 점차 자사를 뛰어 넘는 상태에 이르렀다.
사실 우리에게는 문고리권력이라는 말이 있다. 높은 분을 보좌하는 부속실에 근무하면서 드나드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고 닫아 주는 직책은 정책을 결정하거나 인사를 결정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란 드나드는 사람에게는 가까이 사귀어야 될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잡음이 생겨나고, 심지어는 부정행위가 탄로되어 감옥에 가는 사람도 있다.
문고리 권력이 기승을 부린다는 말은 그 문안에 있는 사람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데서 나온 것일 것이다. 마치 남조 송 시대에 황제의 아들이라 하여 자사가 된 어린 사람처럼 말이다. 자사는 되었지만 일을 어떻게 처리할 줄 모르니 하는 수 없이 문고리를 잡고 있는 전첨에게 자문을 발을 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누가 보더라도 문고리를 잡은 사람이 하급관리인데, 그 문고리를 잡은 사람에게 절절 매는 높은 사람이 천지에 쌓여 있으니, 문고리 권력은 점점 기승을 부리는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풍토에서 남조 송에서 종각(宗慤)이라는 사람이 광주자사에서 예주 자사로 전보되었다. 그런데 전첨으로 오희(吳喜)라는 온 사람이 왔다. 자사인 종각이 일을 처리하여 내려 보내면 관례대로 오희가 이를 틀어쥐고 시행하지 아니하였다. 이를 보다가 참지 못한 종각이 드디어 화를 냈다. “나 종각은 나이가 곧 예순이 되도록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다하다가 단지 하나의 주를 얻게 되니 마치 한 말[斗]과 같은 크기인데 다시는 전첨과 더불어 이에 임하지 못하겠다!”
다시는 전첨과 같이 일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오희도 전첨이 처리한 관례대로 한 것뿐, 크게 잘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전첨이 월권한 것은 잘 못된 것임을 알고 크게 사과하여 이 일은 그대로 끝났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전첨의 전횡 같은 일이 어디 한두 군데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 관례라고 하면서 법망을 벗어나지만 근본적으로는 잘 못된 것이다. 그런데, 종각같이 목숨을 내놓고 고치려는 상관이 없으니, 고쳐지지 않을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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