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제대로 이끌어 가려면 그에 걸 맞는 인재가 있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북방지역을 통일한 나라가 북위(北魏)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실 북위 이전에도 북방지역을 통일했던 왕조가 있었다.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다. 그러나 그는 북조를 통일한 김에 남쪽까지 먹어치우려고 100만 대군을 몰고 남조인 동진(東晉)을 공격하였지만 비수(淝水)에서 참패하고, 나라도 망했던 일이 있다.
그러므로 북위가 한 때 성공하였다고 하여 그것을 지속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위가 북조를 통일한 다음에 이 뒤를 이어받은 수나라가 남조까지 멸망시켜 중국을 400년 만에 통일하였으니, 북위는 그들의 성공을 잘 지키고 발전시킨 셈이다. 그런데 성공을 지키려면 그에 걸 맞는 인재가 있었다.
북위가 통일하고 10년 쯤 되는 시기에 고필(古弼)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그는 백관을 통괄하는 태자를 보필하는 자리에 있었는데, 한 번은 황실이 갖고 있는 원유(園囿)를 줄여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 정책을 마련하였다. 왕조시대에는 쉽지 않은 정책이지만 이를 수립하여 북위의 황제를 만나려고 들어갔다.
이때에 황제는 급사중인 유수(劉樹)와 한 참 바둑을 두고 있어서 한참 기다려도 결재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러자 고필은 갑자기 일어나서 황제와 바둑을 두고 있는 유수의 머리채를 잡아서 마루 아래로 내동댕이치고 등짝을 때리면서 말하였다. ‘조정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실로 너의 죄이다!’이를 본 황제는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바둑돌을 던지면서 말하였다. ‘주청하는 일을 듣지 않은 것은 짐의 잘못인데, 유수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그를 내버려 두라!’
이일이 있고 나서 고필은 관을 벗고 맨발로 황제에게 무례하였던 것에 대하여 벌을 내려 달라고 하였다. 황제도 고필의 행동이 자기 앞에서 무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고필이 나라를 위하여 했던 행동임을 이해하고 용서했다.
그 후에 고필은 벼슬이 올라서 상서령이 되었는데, 황제가 사냥을 떠나면서 모든 업무를 고필에게 맡겼다. 황제는 자기를 따라 사냥하는 병사들에게 살찐 말을 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고필은 말라빠진 말을 내주었다. 또 황제의 지시를 어긴 것이어서 황제는 화가 났다. ‘필두(筆頭)란 놈이 감히 짐을 깎아내리는구나! 짐이 대(臺, 상서대)로 돌아가면, 먼저 이놈의 목을 벨 것이다.’필두란 고필의 머리가 붓같이 생겨서 붙여진 별명이니 고필을 가리키는 말이고, 황제는 사냥에서 돌아가서 고필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고필의 관속들은 자기들도 따라 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모두가 벌벌 떨었다. 그러나 고필은 태연하였다. 황제가 사냥하는 것을 제대로 못하게 한 것도 죄이기는 하지만 살찐 말을 내 주었다가 만약에 전쟁이 터지는 일이 벌어지면 대처하기 어렵게 되는데, 그 죄는 더욱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가의 장래를 먼저 걱정해야 되는 것이 옳으니 비록 그것으로 죽더라도 괜찮다고 하였다.
사실 이때에 북위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북쪽으로 연연(蠕蠕, 흉노의 일종)이 있어서 강성해지고 있었고, 또 남쪽으로는 송(宋, 유송)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북위로서는 이를 항시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였다. 그래서 고필은 황제의 사냥놀이보다 국가의 안보를 더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북위의 황제는 오히려 감탄하면서 ‘이 같은 신하가 있다는 것은 나라의 보물이다.’라고 하면서 옷 1벌과 말 2필 그리고 사슴 10마리를 상으로 하사하였다. 고필에게는 이러한 일화가 많다. 덕택에 북위는 천하를 통일하는 기초를 닦은 것이다. 요즈음도 이러한 관리가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