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남북조 시대는 보통 혼란의 시대라고 말한다. 중국 천지가 사분오열 되어 있고 서로 좀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하여 전쟁을 빈번하게 일으키는 시절이었으니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고생을 많이 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심한 경우에는 전쟁으로 성에 갇혀서 먹을 것이 없자 장수가 사랑하는 애처(愛妻)를 병사들에게 내주어 먹게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말로 비극적인 시대였다.
그러나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이때에 남쪽에 자리 잡고 있던 송(宋)나라에서는 오히려 문제 유의륭은 정치를 잘 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자치통감≫에는 그가 천성이 인자하고 후덕하며 공손하고 검소하여 정치하는 것에 부지런하였고, 법률을 지켰으나 준엄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을 포용하였으나 해이하지 않았다고 기록하였다.
그래서 30년 동안 송의 영역 안에서는 편안하고 무사하였으며, 호구는 증가하였는데, 조세를 내거나 요역을 제공하는 것도 세부(歲賦)를 내는 것뿐이었으며,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올 때까지 스스로 일할 뿐이었다. 정부의 강제적인 동원이 없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염(閭閻) 집에서도 학문을 강의하고 외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고, 선비들은 도타워서 지조가 숭상되었으며, 향촌에서는 경박한 것을 수치로 여겼다. 강좌 (江左, 양자강 동쪽, 지금의 안휘성 蕪湖의 동쪽인 강남)의 풍속이 이때 아름다워졌다고 하였다. 이러하기에 이후에 이 시대를 원가시대(元嘉時代)라고 부르며 칭송하였다.
이 시대에 황제 유의륭의 동생 형양왕(衡陽王) 유의계(劉義季)에 관한 일화가 있다. 유의계는 이때에 형주와 상주에 있는 8개 주의 군사를 지휘하는 도독이었으며, 형주자사를 겸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남부지역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이다. 이렇게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이란 대부분 백성들의 실제 생활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유의계가 일찍이 봄에 들판에 나가 사냥을 하였는데, 거적을 쓰고 밭을 가는 노인이 있었다. 유의계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사냥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를 물리치려고 하였다. 이를 본 노인이 말하였다.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즐기는 것은 옛 사람들이 경계하던 바입니다.”이는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이 말은 ≪상서≫에 나오는 말로 하(夏)의 임금 태강이 사냥을 하다가 나라를 잃어버린 것을 기록하면서 쓰인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으로 알았는데, 엄청난 말을 한 것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너 사냥을 그렇게 하다가는 옛날 태강처럼 나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에 이어서 그 노인은 “이제 따뜻한 햇볕이 널리 퍼져있으니 하루라도 밭을 갈지 않으면, 백성들이 그 시기를 잃게 되는데, 어찌 짐승이나 쫓아다니며 쾌락하고자 하여 늙은 농부를 쫓아내려고 하십니까?” 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유의계가 말을 세우고“현명한 사람이로구나.”라고 하면서 그 노인에게 음식을 주라고 명령했지만 그 노인은 이를 사양하면서 다시 말했다. “대왕께서 농사지을 시기를 빼앗지 않는다면, 경내에 사는 백성들이 모두 대왕의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데, 늙은 농부가 어찌 감히 혼자 대왕이 내려주시는 것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은혜를 개인에게 베풀지 말고 전체에 골고루 베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유의계는 이 현인에개 이름을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고 물러났다.
황제의 동생이며, 한 지역의 통수권자인 유의계에게 충고를 할 수 있는 노인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황제 유의륭이 크게 학문을 일으켜서 4학(學)을 세웠으니, 그 덕택에 교육이 철저하게 보급되었던 덕택일 것이다. 경제와 정치가 중요하지만 인문학적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를 듣노라면 요즈음이 난세처럼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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