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집안이란 어떤 것인가? 선조 가운데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 많고, 그리고 그러한 것이 잘 이어져 오는 집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명문 집안이란 도덕적으로 아무런 흠결이 없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높은 벼슬을 지냈다고 하여도 비열한 수법을 동원했다면 후대의 사람들이 명문집안으로 본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와 관계된 일화가 있다. 남조인 진(晉) 나라 때에 사(謝)씨 집안의 이야기이다. 사씨 집안에는 진나라가 북조의 침략을 막아 국가에 큰 공로를 세운 사람도 있고 또 높은 벼슬을 한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진(晉)왕조에서는 효무제의 딸 진릉(晉陵)공주를 그 집안의 사혼(謝混)에게 시집보냈다. 물론 사혼의 집안은 부유해서 그 부리는 노비만 수천 명이었다.
그러나 사혼이 일찍 죽었다. 진나라에서는 젊은 공주를 청상과부로 늙힐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인지 사씨 집안과 인연을 끊고 돌아오게 하였다. 나라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던 공주는 어린 딸 둘을 두고 떠나야할 처지였다. 하는 수 없이 시댁 조카인 사홍미(謝弘微)에게 집안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후 9년의 세월이 흘러 진 왕조가 송(宋, 유유의 남송)으로 바뀌니, 공주는 새 왕조의 공주가 아니어서 다시 시댁인 사씨 집안으로 돌아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공주가 아닌 동향군(東鄕君)으로 강등되어 예전의 시집으로 돌아와서 대문을 열었는데, 9년 전에 떠날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집안이 가지런히 다스려지고 있었다.
떠날 때 집안을 돌봐 달라고 부탁 받은 사홍미는 입출금을 빠짐없이 장부에 기록해 두었고, 꼭 필요한데만 지출하여 재산은 크게 늘어났고, 전답도 많이 늘어났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동향군은“복야(僕射, 남편 사혼)께서 살아생전 이 아이<사홍미>를 중시하였으니 사람을 볼 줄 안다고 하겠구나. 그러니 복야는 죽지 않은 것이다.”하며 죽은 남편의 뜻이 조카에게도 이어졌음을 감탄하였다.
이러한 일이 있고서 얼마 후에 동향군이 죽었다. 이제 그가 남긴 많은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가 문제였다. 이 일을 주관할 사람은 당연히 사홍미였다. 그는 돌아가신 백부 사혼의 재산을 잘 관리하고 또 늘려 놓은 사람이고, 사혼에게는 딸만 둘이니 이들을 시집보내면 나머지는 사홍미의 몫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본 양심적인 사람들조차 재산은 두 딸에게 나누어 주되 남은 전답과 가옥, 그리고 노비는 사홍미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홍미는 백부의 이 재산에 손도 대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 재산으로 백모의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사혼의 큰 사위 은예(殷叡)가 도박을 좋아하여 재산을 탕진하고 사홍미가 취하지 않은 재산을 다 빼앗아 도박 빚을 갚았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사위의 행동을 보았지만 사씨 집안사람들은 이를 가지고 전혀 다투지 않았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오히려 사씨를 비난하였다. 청렴한 것도 좋지만 이는 재물을 강과 바다에 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자 사홍미가 말하였다. “친척들이 재산을 가지고 다투는 것은 가장 비천한 행동이요. 그것이 없어도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재산을 두고 친척과 다투어야 하겠소?”
남이 잘 못한 것을 이유로 그 재산에 눈을 돌리는 것은 남을 핑계로 자기의 욕심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닐지? 우리 집안의 10세 추밀공(樞密公, 휘 수평)도 혼란 속에서 주인 없는 땅을 경작하면서도 주인에게 도조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였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 땅 주인에게 지불하지 못한 도조와 장부를 전해 준 것으로 유명하다. 두고두고 새겨야 할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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